[밀물썰물] TV 토론
TV 토론은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맞붙은 1997년 제15대 때부터 시작됐다. 김대중 후보는 ‘빨갱이’라는 낙인을 쇄신할 기회로 생각하고 1970년대부터 TV 토론 도입을 주장했다. 이희호 여사는 “TV 토론회에서 남편은 신문 기사나 방송 뉴스가 왜곡하지 않은 모습을 그대로 국민에게 보여 줄 수 있었다. 남편의 대통령 당선은 TV 토론 덕분이다”라고 했다.
TV 토론을 극도로 꺼린 후보도 있었다.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 선두를 달리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TV 토론을 기피했다. 공직선거법이 ‘3차례 이상’으로 규정한 법정토론은 피할 수 없었지만, 방송사가 요청한 후보 합동토론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무산시켰다. 2012년 18대 대선 때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피하는 바람에 3차례만 열리고 말았다. 당시 박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맞붙었는데 정작 신스틸러는 따로 있었다. “박근혜 후보를 반드시 떨어뜨릴 겁니다”라고 쏘아붙이던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 말이다.
역대 최고의 TV 토론 기피자는 김대근 전 부산 사상구청장이 아닐까 싶다. 김 전 구청장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토론회를 고의 기피한 혐의로 당선무효형을 받고 물러났다. 그는 허위진단서를 발급받아 선관위 주최 토론회에 불참했다. 게다가 토론회를 피하려고 교통사고를 모의한 사실까지 확인됐다. 그가 유세차량에 탑승해 선거운동을 할 때 지인이 승용차로 들이받기로 작당한 것이다. 거사일 전날 밤 마음을 바꿔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TV 토론이 얼마나 하기 싫었으면 자해 교통사고까지 모의했을까.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그동안 TV 토론을 기피해 왔다. 윤 후보는 “토론을 하면 결국 싸움밖에 안 난다. 후보 검증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공직선거법은 ‘중앙선거방송관리토론위원회 주관 대담·토론회를 선거운동 기간 중 3회 이상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담 1회, 토론 2회만 해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대면 선거운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론조사 결과도 응답자의 67.7%가 “알 권리를 위해 토론회는 많을수록 좋다”고 찬성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고, TV 토론이 싫으면 후보로 나서지 말아야 한다. 윤 후보가 TV 토론에 적극 나서겠다고 입장을 바꿨다니 지금이라도 다행스럽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