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 사격·러시아 군 투입… 카자흐 시위 ‘소강 속 긴장’
카자흐스탄에서 일주일가량 이어졌던 반정부 시위가 시위대를 향한 정부의 조준사격과 러시아 공수부대 투입, 5000명 넘는 시위대의 체포로 일단 진정 국면에 들어섰지만 긴장감은 여전하다. 시위대의 분노를 촉발한, 해외 도피설이 도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9일 국가안보회의 의장직을 현 대통령에게 이양했다.
시위대는 LPG 연료 가격과 물가 폭등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내세우며 지난 2일 시위를 시작했고 시위는 일주일 가까이 이어졌다. 이면에는 30년간 통치를 하며 국부를 독점했으며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국가안보회의 의장으로 막후 정치를 한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있다는 분석이다.
물가 폭등 이유 시위 1주일 지속
군경 무력진압으로 50여 명 사상
소요 사태 가담 5000여 명 체포
러 군 투입 두고 서방·중국 대립
러시아 타스, 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7일(현지시간)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시위대를 살인자라고 명명한 뒤, 군에 이들에 대한 경고 없는 조준사격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전날 새벽부터 시작된 군경의 시위대 무력진압 작전은 7일까지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5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카자흐스탄 내무부는 8일까지 소요 사태 가담자 5135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한편 카자흐스탄 시위 사태 수습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6일 현지로 공수부대를 파견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8일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시위 사태 대응 논의를 위해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원국 정상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CSTO는 러시아 공수부대를 중심으로 2500명의 평화유지군을 6일부터 카자흐스탄에 파견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강경 진압과 관련해 유럽연합과 미국 등 서방은 우려를 내비친 데 반해, 중국은 지지를 표명하고 나서 카자흐스탄 사태를 둘러싼 진영 대결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EU)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7일 프랑스를 방문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카자흐스탄의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폭력 사태의 중단을 촉구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러시아 군대의 파견 배경에 의문을 표시했다. 그는 워싱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카자흐스탄 정부가 시위 사태에 충분히 대응할 능력을 갖춘 것으로 보이는데, 왜 외부세력이 필요하다고 느끼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도 “미국과 세계는 (카자흐스탄에서)어떠한 인권 침해가 일어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반대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에게 보낸 구두 메시지에서 “당신이 중요한 시기에 단호하게 강력한 조치를 취해 사태를 신속히 수습한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책임과 임무, 국가와 인민에 대해 고도의 책임감 있는 입장을 체현한 것”이라고 지지를 표명했다.
한편 8일 가디언 일요판 옵서버 보도에 따르면,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 ‘영국의 부정축재 정치 문제’에서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일가와 측근들이 영국에 5억 3000만 파운드(약 8600억 원)어치의 부동산 34곳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