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사격 위력 대단… 국방부의 양산 승인 때 감개무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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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 인in人] 국산 권총 K5 개발 이끈 엄혁 박사

“최초의 9mm 국산 자동권총 K5가 25m 사격 운용 시험에서 1인치 송판 7장을 뚫었습니다. 국제 기준은 송판 1장인데 위력이 대단해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국산 자동권총 K5 개발에 참여했던 엄혁(65) 공학박사가 마치 시험장에 있는 듯 당시를 회상했다. 엄 박사는 경남 사천에 있는 한 항공 관련 업체 기술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미 호텔방서 가방에 담아온 권총 분석
격발 장치로 세계 특허, 명중률 높여
국가서 거액 보상금 지급에 깜짝 놀라
엔지니어·기술 인력 계속 우대 했으면

“자동권총 K5는 트라이 액션이라는 격발 장치로 세계 특허도 받았습니다.” 당시 권총 격발장치는 서부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노리쇠를 엄지로 당겨 쏘는 단발 액션과 방아쇠를 당기면 노리쇠가 당겨져 발사되는 더블액션을 사용했는데 K5는 정밀기술을 활용해 흔들림이 최소화 돼 첫발 명중률이 높은 트라이액션 발사장치를 완성했다.

“미국에서 총기 제작을 배운 도미기사 선배들의 기술이 고스란히 이어진 것이죠. K5 국산 권총은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엄 박사는 부산대 석사 과정 중에 대우정밀(주)에 입사했다. 국방부 조병창이 1981년 민영화되면서 입사한 공채 1기다.

“대우가 국방부 조병창을 인수할 때 도미기사와 전문 분야별 도제 수업을 통해 정밀기술을 획득한 엔지니어를 제일 탐냈다고 들었습니다.” 엄 박사는 K5 자동권총 개발 당시 현존하는 세계의 모든 권총을 다 분석했다고 밝혔다. 군 장교들은 당시 콜트사 45인치 권총을 사용했는데 군에서 개발 요구가 있었다. 엄 박사가 속한 기술팀이 본격 9mm 권총 개발에 착수했다. 일부 권총은 군과 경찰의 사전 승인을 받아서 (주)대우 특수물자부를 통해 민간 최초로 권총을 수입했다.

엄 박사는 미국 한인사격연맹 안기홍 부회장을 은인으로 기억했다. “미국 출장 때 월남파병용사 출신인 안 부회장이 보스톤백 가득 권총을 담아 호텔 방으로 찾아와 펴 놓고 분해 조립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엄 박사는 1985년 만든 K5 시제품은 부산에서 자동차로 7시간이나 걸리는 ADD시험장에 가서 시험했다며 1987년 드디어 국방부의 양산 승인이 내려졌을 때 동료들과 함께 감개무량한 기억이 새롭다고 밝혔다.

국산 자동권총 프로젝트를 완성한 엄 박사는 2006년 경남 창원에 있는 SNT중공업에서 수리온 헬기 국산화를 위해 5년간 매진하기도 했다. 2011년 경남테크노파크로 이직해 경남 사천에 있는 항공부품 수출지원단에서 정년퇴직했다. “사천은 항공 관련 회사가 많아 50여 곳과 협약을 맺고 기술 자문 활동을 했습니다. 대우중공업 협력사업으로 항공훈련기 무장시스템 선행개발에도 참여하며 항공 무장체계 관련 연구 보고서를 11권의 책자로 정리한 것도 보람이 있었습니다.” 정밀기술이 항공 분야까지 이어진 증거다.

엄 박사는 “국가에서 권총 개발에 수고했다고 1000만 원의 보상금을 저희 팀에 지급했습니다. 당시 월급이 50만 원 정도였고, 아파트 한 채 값이 2000만 원 정도였는데 어마어마한 상금이라 깜짝 놀랐죠.” 권총 전문가로 경찰에서 요청하는 불법 무기류 자문도 성실히 응해 1992년 경남경찰청장의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는 엄 박사는 “앞으로도 엔지니어가 우대받고, 기술 인력이 귀하게 쓰이는 대한민국이 되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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