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임대차 3법’… 계약갱신 분쟁 14배 폭증
부산 해운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김 모(38) 씨는 최근 집주인에게 계약갱신권을 청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집주인은 자신이 들어와 살겠다며 이사비 300만 원을 얹어줄 테니 나가 달라고 답했다. 오래된 집이라 집주인이 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한 김 씨는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을 했지만, 집주인의 실거주 여부는 사실상 확인이 어렵다는 자문 결과를 받았다.
부산, 2020년 5건서 지난해 71건
법 시행 2년 차 맞아 크게 늘어
계약갱신청구권에 전세가 차별화
같은 단지 내서 배 가까이 차이도
전세가, 도입 전 비해 23% 상승
임대차 3법 도입 이후 부산지역에서 전월세 갱신 관련 분쟁이 10배 넘게 증가했다.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여부에 같은 아파트 같은 평형 전세가격이 수억 원씩 차이나는 ‘이중 전세가’ 현상도 나타났다. 임대차 3법이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도 있지만, 주택가격 급상승기에 시행되어 임대료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10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지난해(1월 1일~12월 24일) 부산지역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에 접수된 분쟁은 176건인데, 이 중 계약갱신 관련 분쟁이 총 71건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보증금 반환(69건), 손해배상(20건) 순이다. 계약갱신 관련 분쟁은 2019년 3건, 2020년 5건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14배나 증가했다. 2020년 7월 임차인이 전월세 계약의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5% 내에서 인상 가능하도록 한 전월세상한제가 시행되면서 관련 분쟁이 폭증한 것으로 분석된다. 임대차 3법은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를 일컫는다.
전국적으로도 지난해 접수된 계약갱신 분쟁은 300건으로, 2020년 153건보다 배 가까이 늘었다. 전체 접수된 분쟁(1602건) 중 보증금 반환(681건)에 이어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 ‘이중 전세가’ 현상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부산 동래구 e편한세상 동래명장 1단지 내 전용 84㎡B(33평) 타입의 최근 3달 전세가는 2억 4000만 원부터 최고 5억 원까지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인근 한 부동산업소 소장은 “임대인과 임차인이 적정한 선에서 합의를 봐서 3억 원대 전세도 있다”며 “이곳에 전세를 얻으려는 임차인 입장에서는 적정한 전세가를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임대차 3법으로 임대시장이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제도 시행 후 전세가는 더욱 올랐다. 임대차 3법이 도입되기 직전인 2020년 6월 부산 아파트 평균 전세 가격은 2억 3421만 원이었지만, 지난해 11월은 2억 8914만 원으로, 이 기간 23%가량 상승했다.
솔렉스마케팅 김혜신 대표는 “전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 거주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필요했다”면서도 “하지만 집값 급상승기에 시행하면서 임차인과 임대인 사이 분쟁이 늘어나는 등 시장 혼란이 가중됐다”고 지적했다.
송지연 기자 sj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