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야구 열광은 지역 쇠퇴·소외감의 출구적 표현”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의 야구 열광은 대단하다. “부산 사람들은 롯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롯데에 미친 것이다.” 가령 2008년, 프로야구 평균 관중은 65만 명이었으나 롯데 관중은 그 2배가 넘는 138만 명이었다. 롯데 팬은 한국 프로야구 성공과 실패의 가늠자다. ‘부산갈매기’가 울려퍼지는 사직구장은 세계에서 제일 큰 노래방이다. 원정 경기장의 3루 관중석까지 모두 채우는 이들이 롯데 팬이다.

왜 이렇게 야구에 열광하는가. 부산연구원 부산학연구센터가 ‘부산학 시민총서’로 출간한 <부산갈매기의 야구 이야기>(황영주 박정이 정상도 공동집필)는 “부산 사람들의 야구 열광 속에 부산의 짙은 페이소스가 드리워져 있다”고 본다. 이른바 ‘부산갈매기의 정치적 함의’가 그렇다는 거다.

부산연구원 ‘부산학 시민총서’
‘부산 갈매기의 야구 이야기’ 출간
“제2도시 걸맞지 않은 경제적 위축
열띤 응원으로 현실 잊으려는 것
롯데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표출”

“롯데 야구는 부산이 제2의 도시이지만 제2의 도시답지 못하다는 자기 연민의 투사체로 작동한다”(108쪽), “제2도시 위상에 걸맞지 않은 경제적 위축으로 부산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을 경험하고 있어 부산을 대표하는 롯데 자이언츠에 더 많은 애정을 쏟는다”(92쪽)는 것이다. 요컨대 롯데 야구에 대한 열광은 위축된 부산의 현실을 망각하려는, 지역 쇠퇴와 소외감의 출구적 표현이라는 거다. “(부산 사람들은)하루하루를 프로야구 응원으로 소비함으로써 현실을 잊어버리려 한다는 것이다.”(93쪽)

부산은 경제적으로 전국 대비 ‘5% 도시’도 안 된다. 지역내총생산(GRDP)이 2020년 4.74%에 불과하다. 수출 비율은 1972년 29.2%에서 2011년 2.62%까지, 거의 10분의 1로 추락했다. 대기업이 없어 일자리도 제대로 없고, 2021년 7대 특·광역시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수도권 집중의 복병에 늘 당하는 곳인데 1970년대 언저리의 ‘제2도시 영광’의 허울에 아직 사로잡혀 있다는 거다.

실제 롯데 성적도 좋은 게 아니다. 롯데가 우승한 것은 1982년 프로야구 원년 이후 고작 2번뿐이다. 롯데 성적은 숫제 하위권이다. 2001~2007년 1차 흑역사의 성적이 ‘8888577’, 연달아 꼴찌(8등) 4번으로 그야말로 ‘꼴데(꼴찌 롯데)’였다. ‘5788’의 2차 암흑기(2013~2016), ‘71078’(2019년엔 10위)의 3차 암흑기(2018~2021) 등을 보건대 “신은 부산에 최고 야구팬과 최악 야구팀을 주셨다”라는 말 그대로다.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2008~2010년의 ‘334’는 ‘로이스터 감독의 매직’이었다. 로이스터는 부산 기질에 맞게 ‘화끈하고 공격적인 야구’를 구사했다. 그뿐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야구를 통해 당대 부산 사람들의 기질과 바람이 표현됐다는 거다. 근대 이후 부산의 야구 역사 또한 녹록잖다. 부산 야구는 1910년대부터 시작돼 식민지 민중의 억눌린 감정을 분출하는 중요한 계기였으며, 특히 1970년대 고교 야구 전성기의 맨 앞자리를 차지했고, 한국 프로야구 출범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역사가 부산갈매기를 만드는 데 역할을 했다는 거다.

답답한 부산 현실에 목을 맨 퇴영적 감정 해소, 부산 야구를 그렇게만 봐야 하나. 아니다. 저자들은 “그 속에서 또 다른 역사가 만들어졌다”고 주목하며 “부산 야구의 역사와 서사의 공간인 사직구장을 함부로 허물어선 안 된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사직구장은 부산갈매기의 함성이 깃든 귀중한 자산의 하나라는 거다.

그런데 매번 부산시장 선거 때만 되면 사직구장을 허물고 새 야구장을 지어야 한다는 논의가 오간다. ‘프로야구 인프라 구축’이 명분이다. 하지만 “인프라는 야구장으로 이어지는 지하철 도로 다리 교통망 주차장”이라고 지적한다. “추신수·이대호 선수의 지적처럼 (사직구장의)어떤 시설이 문제이니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집중하는 것이 몇천 억의 세금을 들여 새 야구장을 짓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이다.”(200쪽) 한국·부산 야구 역사를 없애버린 ‘구덕야구장 철거’의 과오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거다.

한편 부산학연구센터는 ‘부산학 교양총서’로 16개 골목의 역사와 현재를 풀어낸 <부산의 골목길>, ‘부산학 연구총서’로 기장 6개 마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살핀 <부산기장 해안마을>을 동시에 출간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