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바람에 다 털리고/이정모(1949~ )
얼마나 가벼운지
바람에 다 털리고
그대에게 없다는 것
줘버리거나 털리거나
사라졌다는 생각
새끼들 마냥 떠나가고
그득했던 것들이 비워진 통은 가볍다
그러나
지고 가던 물통에서 떨어진 물이
길섶의 풀을 살린다
이때 햇살은 오래도록 머물 것이니
섭섭하다는 것은
떨어져 나간 뒤를 보라는 말일 것이다
-시집 (2018) 중에서-
젊었을 땐 역동적인 삶을 원했으나 그 삶은 늘 불안정했다. 나이가 들어 안정된 삶을 원했으나 이 또한 비가역적이고 비역동적이었다. 역동적인 모든 삶은 과도기가 있고 어느 순간 매듭을 지어야 할 순간이 있다. 한 매듭을 풀고 떠나야 할 때를 경험해 본 시인은 말한다. 움켜질수록 삶은 달아나고 가졌던 것들은 바람에 다 털린다는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떠나는 것들을 보면서 시인은 말한다. 지고 가던 물통의 물이 채우지 못했던 삶, 그 삶의 변두리 길가에서 흘렸던 물이 희망을 살린다고. 또 시인은 안다. 걷던 길의 목적지에 무슨 큰 세상이 있는 것이 아니고 길가 변두리 풀숲에서 자라는 것이 우리 삶이라는 걸. 뒤돌아보며 삶은 매듭지을 수 있지만 우리 생을 통해 매듭이 없는 것이 딱 하나 있다. 시간에는 매듭이 없다. 매듭 없이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으로 바람이 우리를 털고 간다. 이규열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