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구평동 산사태’ 항소심에서도 책임 회피 급급
부산 사하구 예비군훈련장 일대에서 발생해 주민 4명이 숨지고 인근 기업들에 막대한 재산피해를 안긴 ‘구평동 산사태’(부산일보 2019년 10월 4일 자 1면 등 보도)와 관련해 국방부가 항소심에서도 선고 직전 뒤늦게 전문가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책임을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유족과 피해 기업들은 1심에서 사고 책임이 인정된 정부가 사고 발생 2년이 지나도록 실질적인 보상을 미루면서 사과는커녕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며 강도 높게 비판한다.
11일 국방부 등에 따르면 12일 오전 11시 20분 부산고법에서 사하구 구평동 산사태 관련 손해배상 항소심 재판이 재개된다.
항소심은 지난해 5월 시작돼 10월 국방부와 피해자 측의 변론이 종결됐고 12월 판결만을 앞두고 있었지만 국방부 측 요청으로 선고기일이 미뤄졌다.
선고 직전 육사 명예교수까지 동원
기존 토목학회 보고서 딴지 걸어
피해자들 “여전히 남 탓만” 분통
보상 지연으로 복구도 지지부진
국방부는 변론을 종결한 뒤 선고기일 직전에 재판부에 성토사면 붕괴 원인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가 작성한 29쪽 분량 의견서에는 사고 원인이 예비군 훈련장 때문이 아니라 지질학적 원인에 따른 자연재해라는 취지의 내용이 포함됐다.
사고 당시 부산시 의뢰로 사고 원인 규명을 맡은 대한토목학회 부울경지회는 2020년 4월 ‘성토사면 붕괴의 원인분석 및 보강대책 방안 연구용역 최종 보고서’에서 산사태의 원인을 국방부가 석탄재로 성토한 사면이 수분을 머금으면서 붕괴해 발생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국방부 측은 이번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연병장이 사고의 중요한 원인인 것처럼 주장하는 토목학회의 주장은 과학적인 근거나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면서 ‘사실관계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족과 피해 기업들은 항소심 선고 직전에 뒤늦게 의견서를 내면서 책임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정부를 비난했다. 피해자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서면 관계자는 “국방부는 재판 과정에서 별도의 의견서를 제출하지 않으면서 손해배상 비율을 놓고 재판을 이어가는 분위기였는데, 지금 와서 모든 책임이 없는 것처럼 의견서를 내고 재판을 길게 이어가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고로 가족 3명을 잃은 권용태(51) 씨는 “사건이 발생한 지 2년이 넘었지만 그날 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할 정도로 고통스럽다”면서 “지금까지 공식적인 사과조차 없는 국방부가 책임 피하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니 화가 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사고 피해업체 관계자도 “사고가 발생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공장 인근은 아직 복구가 안 된 곳이 많다”면서 “피해보상 절차가 완료돼야 제대로 복구도 시작할 수 있을 텐데 정부가 지지부진하게 시간만 끌고 있어 답답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논의 이후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방부 내부에서는 관련 답변 책임을 두고 육군 53사단과 국방부가 혼선을 빚었다.
앞서 지난해 5월 1심 재판부는 “이번 사고 원인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피고가 적극적으로 조성한 성토사면과 배수로 보수하자 때문”이라며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36억 5000만 원 상당을 보상하라”고 판시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