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 941 >양반은 겻불 안 쬔다
이진원 교열부장
‘직접고용을 외치며 전국 52개 고속도로에서 어깨걸이를 했던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더이상 요금수납원이 아니다.’
어느 칼럼 구절인데, 단어 하나가 거슬린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사전)을 보자.
*어깨걸이: 부인용 목도리의 하나. 어깨에 걸쳐 앞가슴 쪽으로 드리우게 되어 있다. 「비슷한말」 숄(shawl)
이러니, 어깨걸이를 했다고 하면 다들 목도리를 하나씩 걸쳤다는 뜻이 돼 버린다. 다시 표준사전을 보자.
*걸다: ①벽이나 못 따위에 어떤 물체를 떨어지지 않도록 매달아 올려놓다.(벽에 그림을 걸다./옷걸이에 옷을 걸다….) ②자물쇠, 문고리를 채우거나 빗장을 지르다.(정문에 자물쇠를 걸다….) ③솥이나 냄비 따위를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 놓다….
이처럼 ‘걸다’를 찾아봐도 ‘어깨’와 어울릴 만한 뜻풀이가 나오질 않는다. 한데, 이런 말이 있다.
*겯다: 풀어지거나 자빠지지 않도록 서로 어긋매끼게 끼거나 걸치다.(어깨를 겯다./총을 결어 세우다./나졸 무리는 네 사람으로서, 술에 거나하게 취하여서 넷이 서로 팔을 겯고 무슨 소리를 하면서 갈지자걸음으로 이편으로 향하여 왔다.)
그러니, 서로 나란히 서서 어깨동무 하는 건 ‘어깨를 걸다’가 아니라 ‘어깨를 겯다’로 써야 한다. 아래는 김용만 시인의 시 ‘돌담’ 뒷부분인데, 여기 나온 ‘어깨를 건다’도 ‘어깨를 겯는다’라야 하는 것.
‘…//작은 놈/큰 놈이/주고받고//더하고 빼고/치고받는다//어깨를 건다//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냐’
이처럼, 발음이 비슷해 잘못 쓰기 쉬운 말로는 ‘책걸이’도 있다. 흔히 ‘학기가 끝나서 책걸이 행사를 했다’처럼 쓰지만, ‘책거리’의 잘못인 것. 표준사전을 보자.
*책거리: 글방 따위에서 학생이 책 한 권을 다 읽어 떼거나 다 베껴 쓰고 난 뒤에 선생과 동료들에게 한턱내는 일. =책씻이.(우리 독서회는 한 학기 윤독이나 강독이 끝난 뒤 책거리로 그 학기를 마무리한다.)
‘겻불/곁불’도 잘 구별해서 써야 할 말. 표준사전을 보자.
*겻불: 겨를 태우는 불. 불기운이 미미하다.(질화로에 남은 겻불도 꺼졌다….)
*곁불: ①얻어 쬐는 불.(그는 정류장 옆에서 곁불을 쬐며 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②가까이하여 보는 덕.(그들의 눈에는 나의 고시 합격이 권력의 곁불을 쬐러 들어가는 것쯤으로 비치었던 모양이다.)
이 가운데 ‘양반은 얼어 죽어도 ( )은 안 쬔다’에는 ‘겻불’이 옳은 말. ‘아무리 궁하거나 다급한 경우라도 체면을 깎는 짓은 하지 아니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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