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의식한 국방부, ‘구평동 산사태’ 항소심 변론 포기
부산 사하구 예비군훈련장 일대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주민 4명이 숨진 ‘구평동 산사태’ 사건 항소심에서 국방부가 변론을 포기했다. 산사태 발생 원인을 자연재해 탓으로 돌리려 하는 국방부(부산일보 1월 12일 자 10면 등 보도)에 비판이 쏟아지자 이를 의식했다는 분석이다.
부산고법 민사5부(부장판사 김문관)는 12일 오전 11시 20분 구평동 산사태 사건의 변론기일을 열었다. 재판이 시작되자 피고인 국방부 측 변호인은 변론재개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먼저 밝혔다.
국방부 “1심 반박 부적절 판단”
국가 책임 인정 1심 유지될 듯
피해 유족 “여전히 사과 없어”
국방부 변호인은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가 1심 판결을 반박하는 전문가 의견을 주기로 했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어려워졌다”며 “다른 전문가를 섭외하려면 비용 지출이 필요한데, 피해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국가가 별도의 비용을 지출하면서 1심 판결에 반하는 전문가 의견을 받는 것은 피고의 태도로 적절하지 않다는 내부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변론재개 신청서에 참고자료로 낸 서증도 제출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냐’고 묻자 변호인 측은 “그 자료까지만 서증으로 내는 것으로 하겠다”고 답했다. 국방부 변호인이 언급한 자료는 자연재해로 사고가 발생했다는 내용의 의견서다.
재판부는 “사건의 성격상 재판을 다시 진행하더라도 한 번 정도 전문적 성격의 반박 기회를 피고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며 “피고 측에서 의견을 정리해왔으니 변론을 종결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국방부가 변론을 포기하면서 항소는 기각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 1심 재판부는 구평동 산사태를 명백한 인재로 판단하고 정부가 피해 유가족 11명과 기업 1곳에게 위자료 등을 포함해 36억 5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피고가 적극적으로 조성한 성토사면과 배수로 보수 하자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했다고 본 것이다. 자연재해로 인한 국가의 책임 공제는 10%만 인정했다.
피해 유족은 국방부가 여전히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등을 내놓지 않고 있다면서 비판했다. 유족 권용태(51) 씨는 “국방부는 이 같은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오늘도 책임에 대한 부분을 전혀 언급하지 않아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항소심 선고는 다음 달 9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안준영·탁경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