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K라면
유럽 알프스 고봉 융프라우의 전망대에는 한국 사람에게 더 각별히 여겨지는 것이 있다. 간이식당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국산 라면이다. 융프라우만이 아니다. 네팔의 히말라야로 향하는 길목, 지구 최남단 칠레 푼타아레나스 등 ‘이런 곳에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방방곡곡에 국산 라면이 진출해 있다. 수출 효자 종목이라면 모름지기 라면 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면과 수프가 분리된 지금 방식의 라면은 태평양전쟁 직후 일본에서 탄생했다. 1961년 전중윤(1919~2014) 제일생명보험 사장은 일본 출장길에 그런 라면을 보고는 손뼉을 쳤다. 귀국 직후 삼양식품(주)를 설립한 그는 1963년 자체 라면 생산에 돌입했다. 회사명을 ‘삼양(三養)’이라 지은 뜻이 장하다. ‘三’은 천(天)·지(地)·인(人) 삼재를 뜻하고, ‘養’은 살찌운다는 의미다. 사람을 포함 온 세상을 풍요롭게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런 ‘삼양’에 대해 양 3마리로 캐릭터화하려는 시도가 있는데, 창업주의 뜻에는 어긋난다 하겠다.
경쟁업체들의 추격이 거셌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던 삼양식품은 1967년 베트남 등 동남아 여러 국가에 라면을 수출하기에 이른다. 1969년 32만 달러였던 삼양라면 수출액은 이듬해에는 100만 달러를 넘길 정도로 급증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주도권을 다른 업체에 넘겨 줘야 했지만, 삼양식품은 국산 라면의 해외 진출에 첨병이자 버팀목 역할을 했다.
해외에서 한국 라면은 ‘K라면’으로 불린다고 한다. 따지자면 K팝, K드라마, K무비에 앞서 세계적으로 한류 바람을 일으킨 건 K라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라면 수출액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라면 수출액은 6억 790만 달러였다. 2011년에 1억 8673만 달러였는데, 10년 만에 3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한 게 그 정도 금액이고, 해외 공장에서 생산해 판매한 것까지 합치면 실제 K라면의 글로벌 위상은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아쉬운 건 라면이라면 으레 질 낮은 음식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오죽했으면 내수용과 수출용에 차이가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마저 있을까. 최근 한 업체가 ‘프리미엄’ 라면을 선보였으나 너무 비싸서 호응을 얻지 못하는 모습이다. 좀 저렴하면 좋을 텐데, 값싸고 질 좋은 라면을 기대하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임광명 논설위원 kmy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