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시대 문화풍경] 치곡(致曲)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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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강사

음악(music)은 셀 수 없는 명사다. 그래서 한 편의 작품을 칭할 때는 ‘a piece of music’, 즉 ‘곡(曲)’이라 한다. 곡은 전체가 아닌 작은 부분을 가리킨다. 치곡(致曲)이란 그러한 부분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사소한 일에도 지극한 정성을 다하라는 뜻이다. 영화 에서 정조(현빈)가 가장 신임하는 신하 상책(정재영)이 치곡을 설명하는 장면은 명대사,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으로 배어나고, 겉에 배어나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화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상책은 왕을 암살하기 위해 고용된 살수였다. 그러나 왕의 곁을 그림자처럼 지키며 일상을 함께하는 과정에서 왕의 ‘정성스러움’에 감동하여 절체절명의 순간 왕을 지켜낸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말이다. 살수였던 상책이 ‘생육’, 즉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됨으로써 결국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오롯이 보여준다.

치곡은 중용 제23장에 나온다. 원문은 성즉형(誠則形), 형즉저(形則著), 저즉명(著則明), 명즉동(明則動), 동즉변(動則變), 변즉화(變則化)다. 정성스러움을 다하면(誠) 형태가 만들어지고(形), 형태가 뚜렷해지면(著) 밝아져서(明) 감동시키고(動) 변화시켜(變) 결국 완전히 새로운 그 무엇이 되는 과정(化)이 바로 치곡이다. 정성(誠)은 치곡의 첫 단계다. 문제는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정성을 다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삶의 자리 그 어디에서든 치곡에 이르는 길은 정성으로부터 비롯된다. 무엇보다도 타자와 세계에 얼마나 정성을 다했는가를 스스로 되묻고 성찰해야 하겠다.

최근 부산의 여러 문화예술기관 대표를 새로 선임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새해 벽두의 변화라 기대가 적지 않다. 이런저런 기대나 우려에 흔들리지 말고 사소한 것부터 살피고 ‘정성’을 다해야 하겠다.

문화예술발전이라는 가치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이르는 길 또한 중요하다. 부산문화를 이끌어가는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며 대표의 노력만으로 이룰 수도 없다. 대표의 소명의식과 정성을 다하는 자세, 조직 구성원들의 감화와 열정, 그리고 부산시민의 참여와 감동이 필수적이다. 눈길을 주고 정성을 다해야 할 일이 어디 한두 가지랴. 음악 한 곡, 공연 한 편, 프로젝트 하나에도 곡진(曲盡)하게 임할 때, 문화는 변화(化)하고 아름다운 화음으로 화(和)하게 될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가장 평범하면서도 명징한 진리를 거듭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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