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호’ 하고 불어 주자, 눈아이가 눈물을 흘렸다
눈아이/안녕달
겨울 하늘을 본다. 혹시 눈이 내리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이의 그리운 ‘눈 친구’가 돌아오기를.
안녕달 작가는 유년의 한때를 추억하는 그림책으로 독자의 마음을 덥힌다. 기발한 상상력과 일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책을 만들어 온 작가의 신작 이다. 안녕달 작가에게 새 그림책 이야기를 들어봤다. 얼굴도 실명도 공개하지 않는 작가와의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됐다.
안녕달 작가는 첫 그림책 (창비)부터 주목을 받았다. 더위를 피해 수박으로 만든 수영장에서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내용으로, 현실에서 볼 법한 세대별 피서법 등 여름의 정취를 잘 녹여내 독자에게 즐거움을 줬다. 실제 수박을 이용한 독후활동 사례가 SNS에 이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15년 7월에 출간된 이 그림책은 현재 68쇄까지 발행됐다.
한 아이와 눈아이의 우정을 다룬 그림책
상대의 따뜻한 말에 울컥해지는 순간 포착
관계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도 빛나
색연필로 그린 그림 이야기와 잘 어울려
작가는 소라 껍데기 속에서 펼쳐지는 (창비),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이 쓰레기통에서 우리를 기다린다는 (책읽는곰), 소시지 할아버지와 강아지의 만남과 이별을 다룬 (창비) 등 남다른 상상력을 그림책으로 풀어냈다.
안녕달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은 게으름에서 나온다고 했다. “멍하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이 생각 저 생각이 떠오릅니다. 쓸데없는 생각의 더미에서 가끔 쓸만한 생각이 있으면 적어 두고 이야기를 만듭니다.”
는 2012년의 일러스트 작업에서 시작됐다. 작가는 지난해 웹진 와의 인터뷰에서 “한 아이가 녹은 눈사람더러 울지 말라면서 안아 주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는데, 그 일러스트가 이야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는 한 어린이와 눈아이의 우정을 다룬다. 아이는 누군가 만들다 만 눈덩이가 뽀득거리며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다. 아이는 그 눈덩이에 손과 발, 눈과 입을 만들어준다. 눈덩이는 스스로 움직이고, 세상을 보고 말할 수 있는 눈아이가 된다. 혼자서 떠드는 눈아이에게 아이가 귀를 만들어주면서 둘은 친구가 된다.
배고픈 눈아이를 위해 눈으로 빵을 만들고, 눈아이가 녹지 않게 장갑을 낀 채 손을 잡고, 책가방 썰매를 타다 넘어진 눈아이를 툭툭 털어준다. 아이가 눈아이에게 괜찮냐고 물어보고 ‘호오’하고 불어주자 눈아이가 눈물을 흘린다. 왜 우느냐는 아이의 질문에 눈아이는 “따뜻해서”라고 답한다. 안녕달 작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라고 했다.
“우리가 상대의 따뜻한 말에 울컥해지는 순간을 그린 겁니다.” 작가는 책을 통해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눈아이가 혼자서 ‘우아 우아’ 말하니까 아이가 귀를 뚫어주는 장면도 좋아합니다. 관계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이야기 속 눈아이의 모습이 계속 변하는 것도 관계에 대한 생각의 연장선에서 나온다. 눈을 맞으며 눈아이가 점점 커지는 장면이나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눈아이가 작아지고 더러워지는 장면에는 ‘관계’를 보는 작가의 시선이 반영됐다. “어떤 관계든 상대가 반짝이고 커 보이는 시기가 있고 볼품없어지는 시기도 있지요. 그런 모습들을 그림책에 담았습니다.”
눈아이가 묻는다 “내가 더러운 물이 되어도 우리는 친구야?” “응.” 아이의 대답에 눈아이는 웃었다. 눈처럼 순수한 아이들의 우정이 느껴지는 대사이다. 백색의 세상에 점점 초록이 올라오면서 눈아이는 사라진다. 아이는 두리번거리며 계속 눈아이를 찾는다. 계절이 지나 하얀 눈이 내린다. 아이와 눈아이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번에 그들이 맺는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색연필로 그린 따뜻한 느낌을 주는, 그러면서 여백이 많은 그림이 잔잔한 이야기와 잘 어울린다. 안녕달 작가는 “익숙한 재료로 단순하게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자신의 책이 독자들에게 ‘재미있는 책’으로 다가가길 원했다. “제가 만든 이야기를 보고 독자가 ‘한 조각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책장에 꽂아 두었다가 언젠가 다시 꺼내 보고 싶은 책이 되면 좋겠습니다.” 안녕달 글·그림/창비/96쪽/1만 5000원.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