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문화공간은 ‘지역 문화 안전망’이다
부산지역 문화공간 활성화 모색 토론회
상당수 시설 ‘법적 근거 없음’에 발목
세밀한 실태 조사·지원 조례 뒤따라야
민간이 운영하는 문화공간 활성화 방안을 고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부산지역 문화공간의 활성화를 모색하다’ 토론회가 13일 부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국회의원실이 주최하고 부산문화공간연합회가 주관했다. 토론회는 민간 문화공간 활성화를 위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자리였다. 원향미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선임연구원과 김은숙 스페이스 움 대표가 주제 발표를 했다.
2021년 부산시민 문화예술활동 트랜드 조사에서 문화예술공간 이용이 어려운 이유로 ‘이용가능 시간이 맞지 않음’과 ‘접근성이 떨어짐’이 1·2순위로 거론됐다. 일상공간 가까이 있는 민간 공연장·갤러리·서점·공방·작은도서관 등은 시민 문화서비스 거리를 좁히는데 기여한다. 민간 문화공간은 동네 커뮤니티 장소로, 가정이나 직장 외에 사람들이 모여 어울리는 ‘제3의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원 선임연구원은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슬세권(슬리퍼를 신고 찾아갈 수 있는 권역) 공간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민간 문화공간의 역할들도 강조되고 있다”며 “민간 문화공간의 공공적 가치가 충분히 입증된다”고 했다.
이렇게 민간 문화공간은 지역 문화안전망 역할을 하지만, 문화시설 지원에서는 사각지대에 놓인다. 김은숙 대표는 “개인 상업공간으로 보기 때문에 운영자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코로나19 지원책으로 마련된 ‘민간 소공연장 활성화 지원사업’ 사업 공고문에서 ‘미등록 공연장 포함’이라는 문구를 봤을 때 눈물이 났다고 했다. 김 대표는 “로컬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민간 문화공간을 활성화하고 지자체와 연계하기 위해 분야·권역별로 세분화된 실태조사가 필요하고, 민간이 운영하는 소공연장 활성화를 위한 지원 방안과 조례 개선안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부산에는 지역서점 활성화 지원 조례와 민간공연장 공연예술활동 진흥 조례가 있다. 지역서점은 생활문화시설로 지정되어 있고, 민간공연장은 공연법에 근거해 ‘연간 90일 이상 또는 계속하여 30일 이상 공연에 제공할 목적으로 설치 운영하는 시설’에 한정된다. 때문에 복합문화공간, 갤러리카페 같은 민간 문화공간 다수가 ‘법적 근거 없음’에 발목이 잡힌다.
토론회에서 인천시와 대구시 수성구 ‘작은문화공간 활성화 지원 조례’가 소개됐다. 조례는 소규모 문화시설 또는 문화예술분야의 창작, 연습, 발표 활동에 이용되는 시설로 민간이 운영하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 이에 따라 지자체는 자문위원회를 두고 작은 문화공간 활성화 사업이나 공간 조성·운영 등 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심의할 수 있다.
경기도 고양시 문화공간 공유 활성화 지원 조례도 창작예술활동과 시민 대상 문화체험·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시설로 문화공간을 정의한다. 문화공간이 다양한 형태로 새 기능을 더하며 진화하고 있음을 고려해 ‘열린 시선’으로 법적 근거를 마련한 예이다.
원 선임연구원은 “조례에 해당하는 문화공간의 범위를 넓히고, 지원 영역을 프로그램 같은 일회성 지원보다는 운영비 지원·컨설팅·네트워크 구성·기초지자체와의 연결 등으로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간 문화공간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은 장기적으로 도시 유휴공간의 문화적 활용(부산일보 2021년 4월 19일자 18면 보도)이나 문화예술과 커피도시 부산의 접목(부산일보 2021년 12월 8일 14면 보도)을 끌어내는 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민간 문화공간 활성화를 위해 공동 홍보 플랫폼 구축, 공공 문화기관과의 협력, 메세나 활용안도 제안됐다. 이일록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문위원은 “과거에는 활동의 주체가 공공적 가치를 결정했다면 이제는 활동 내용에 따라 공공적 가치가 결정된다”며 민간 문화공간에 대한 공적 지원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류기정 부산문화예술교육연합회 이사는 “경제적 관점으로 봐도 문화공간에 대한 지원으로 발생하는 비용보다 (민간 문화공간을) 지원해서 사회적으로 얻게 되는 수익이 훨씬 크다”며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