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거창한 세리머니, 정치적 수사만 남은 북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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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헌 해양수산부장

빈 수레가 요란했다.

지난달 23일 부산항 북항 문화공원에서 열린 ‘부산항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 업무협약식’에는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박형준 부산시장, 최인호·안병길 국회의원, 강준석 부산항만공사(BPA) 사장 등이 대거 참석해 업무협약서에 서명했다.

행사 1주일 전부터 업무협약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고, 주요 협약내용에 대해서 조금씩 정보가 새어 나왔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해수부, 부산시, BPA 등 이해당사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굳게 닫았다. 아마도 기관장들이 대거 참석한 업무협약식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함일 것으로 보였다.

알맹이 빠진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 협약
해수부-부산시, 지역 여론 고려 생색내기
표류 중인 오페라하우스 건립비 지원 여부
진지한 대화 없이 이해관계 따라 미봉책만

여기까지는 이해했다. 미리 알려진 주요 협약내용을 두고 ‘설마 이것 뿐이겠어’라는 의구심과 함께 보도 자제라는 기다림의 시간도 가졌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알맹이가 없었다. 예상했던, 이것 뿐이었다.

요약하자면, 첫 번째 쟁점인 공공콘텐츠 시설의 소유 여부를 두고는 부산시와 BPA가 각각 1부두 내 복합문화공간과 해양레포츠콤플렉스의 소유권을 가지는 것으로 정리됐다. 두 번째 쟁점인 트램 차량비용 부담은 부산시와 해수부가 서로 결정을 못하고 법제처의 유권해석에 따르는 것으로 합의했다.

좋게 말하면 서로 한 발씩 양보하는 협의였고, 비판적으로 접근하자면 서로 하나씩 주고받는 기계적인 합의일 뿐이었다. 협약식 당일 거창한 세리머니와 협약내용을 엠바고처럼 함구했던 것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여기까지도 이해했다. 어쩌면 지엽적인 문제를 갖고 8개월여 동안 끌면서 부산시민들의 피로감이 커졌고 여론의 뭇매를 맞아 온 해수부와 BPA 입장에서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싶었을 터.

또 부산시도 들끓는 불만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박형준 시장이 해수부-부산시 간 실무협의회 구성을 직접 제안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끝을 봐야 했을 것이다. 오는 6월 지자체장 선거를 고려하면 해를 넘기지 말고 일단 봉합부터 하자는 방향으로 관계기관들이 모처럼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렇게 조속히 혹은 졸속으로 봉합하려다 보니 가장 큰 쟁점이었던 북항 오페라하우스 건립비는 사실상 손도 못 댔다. 이건 이해 못하겠다. 부산시와 해수부는 ‘오페라하우스 건립비는 지원 가능 방안을 논의해 추진한다’라고 협의서에 명시했다. 정치적 수사일뿐이다.

돈줄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물론 해수부 내부에서조차 오페라하우스 건립비(800억 원)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나 움직임은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만, 부산 여론이 시끄러우니 당분간 이를 잠재우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차기 정권에서 정무적으로 판단해 결정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진다.

2018년 5월 착공에 들어간 오페라하우스는 재원 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고, 2018년 12월과 2019년 10월 BPA와 기재부가 각각 지원 불가 방침을 밝히면서 수 년째 재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공사가 지연되면서 물가 상승 등으로 사업비는 더 늘어나 현재 총 사업비 3050억 원 가운데 롯데그룹이 기부한 1000억 원외에는 재원이 없는 상황이다.

현재 공정 20%대에 머물면서 당초 내년 상반기 준공 목표는 벌써 물 건너 갔다. 북항재개발 1단계 마무리 시점인 2024년에 준공될 수 있을지도 사실 낙관할 수 없다.

북항재개발 부지의 랜드마크이자 화룡점정인 오페라하우스가 수 년째 표류하는 데도, 그래서 속은 곪아가는 데도 해수부와 부산시는 진지한 대화조차 나누지 않고 봉합부터 했다. 서로의 이해 관계에 따라 거창한 세리머니와 정치적 수사만 남기고.

문성혁 해수부 장관은 이날 협약식에서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 계획에 대한 합의안 마련으로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말했고, 박형준 부산시장은 “이번 협약을 계기로 해수부, BPA와 ‘적극 협력’해 북항을 세계적인 해양관광 거점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시민들은 궁금하다. 어리둥절하다. 여기서 말하는 ‘전환점’이 무엇이고, ‘적극 협력’이란 것이 무엇인지. 해수부와 부산시는 이젠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답해야 한다.

corni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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