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호랑이 이야기
이소정 소설가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크리스마스보다 새해를 더 의미 있게 생각하게 됐다. 연말의 들뜨고 부풀어 오르는 기분에 취하기보다는 정갈한 새해를 준비하는 사람이 됐다. 전날 일찍 잠들고 일어나 해를 보고는 미리 물에 불려둔 새하얀 떡으로 떡국을 끓여 먹는다. 조용한 하루를 보내며 올해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게 된다.
올해는 2022년 임인년, ‘검은 호랑이의 해’다. 우리나라는 산악 지형 덕분에 단독 영역 생활을 하는 호랑이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바위 아래나 동굴 같은 곳을 은신처 삼아서 생활했다고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는 2월에 호랑이가 궁궐 마당에 뛰어들었다는 내용도 나온다. 그래서 호랑이는 신비한 동시에 무서운 동물이었다.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은 호환마마(천연두)와 호랑이를 가장 무서워했다고 한다. 둘 다 목숨이 걸린 일이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천연두 같은 코로나는 우리를 두렵게 한다. 하지만 호랑이는 한반도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두려움보다는 신비로움이 더 크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자주 갔던 동물원에서도 호랑이는 단연 인기였다. 아이들은 약간은 겁먹은 얼굴로 호랑이 우리를 찾지만 이내 실망하곤 했다. 이야기 속에서 접했던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 지혜와 용맹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갇힌 짐승의 무력감만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 옛날의 영광은 어디로 간 걸까. 하지만 그건 어쩌면 내 생각일 뿐이다. 아이들에게 호랑이는 여전히 생생하고 가까운 존재다.
우리나라 호랑이가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는 곳은 전래동화 속이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가 얼마나 놀라운 말인지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매번 확인했다. 그 말이 산을 넘을 때마다 반복되는데 전혀 그 공포가 꺾이지 않는다. 썩은 동아줄을 잡고 떨어진 호랑이는 죽어서도 공포스럽다(전래동화는 아이들에게 겁을 주어 권선징악을 가르친다).
또 다른 호랑이 이야기도 있다. 산에서 호랑이를 만난 나무꾼이 꾀를 내어 호랑이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자신이 죽으면 어머니를 부탁한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을 호랑이는 그 나무꾼을 아우로 그 어머니는 진짜 어머니로 생각한다. 나무꾼의 어머니가 죽자 자신도 앓다가 죽는 호랑이의 효심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팥빙수의 전설>은 어쩌다 맛있는 팥빙수를 만들어내는 할머니와 귀여운 호랑이가 등장한다. 이렇게 보면 호랑이는 깊은 산속의 짐승이 아니라 다양한 우리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하다.
‘대낮에도 햇볕이 안 드는 낡은 방이었다. 그가 발견된 장소는 화장실. 집 안에서도 가장 어둡고 비좁은 공간이었다.’
얼마 전 숨진 지 6개월 만에 발견된 스무 살 청년의 고독사 기사 내용의 일부다. 그에게 그곳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어둡고 습한 곳이었지만 결코 은신처는 아니었다. 창밖으로 사람들이 지나 다녔지만 동물원의 우리도 아니었다. 그대로 무덤이 된 방.
호랑이해인 올해, 우리에게는 무섭고, 어리석고, 지극하고, 때때로 즐거운 일들이 가득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더 힘든 한 해가 될 시작에 앞서 섣불리 희망을 꿈꿀 수 없다. 다만 가두는 호랑이가 아니라 풀어 놓는 호랑이의 해가 되기를.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좁은 동굴 속에서 나와 잠깐 햇빛을 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