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탐정 코남] #11. 기장 공룡 발자국이 고성보다 나은 이유는?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의 모든 궁금증을 직접 확인하는 '맹탐정 코남'입니다. 황당하고 재미있는 '사건·사고·장소·사람'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한 발짝 물러서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여러 가지. 유튜브 구독자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사건개요>

부산 기장군 일광면 신평소공원 해안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됐다. 해안가 갯바위 등에서 공룡이 걸어 다닌 흔적인 ‘보행렬’이 발견됐다고 한다.

20cm 안팎 크기 발자국이 적어도 10개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고 이곳의 화석은 영남권에서 나타난 공룡 발자국 중 가장 늦은 시기, 백악기 후반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 발로 걷는 공룡(조각류)과 목이 긴 공룡(용각류)의 발자국 화석도 발견됐다. 맹탐정이 공룡 발자국을 찾으러 직접 나가봤다.

<현장검증>

공룡 발자국을 찾으러 간다!

맹탐정은 공룡이 상징인 학교를 나왔다. 학교 구도서관 입구에는 목이 긴 공룡(용각류)의 골격이 복원되어 있었다. 고개를 한껏 쳐들어도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울 정도로 목이 길었다. 애칭은 무려 '천년부경용'. 애교심 솟는 이름이다.

응원하는 프로야구 구단도 공룡을 마스코트로 삼는다. 갈매기를 마스코트로 하는 구단엔 상처만 남았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도 '쥬라기 공원'이다. 1993년 '영구와 공룡 쮸쮸'라는 영화를 통해 영화관에서 공룡을 처음 만났다. 실망한 어린이는 같은 해, 심지어 같은 날 개봉한 '쥬라기 공원'에 열광했다. 컬쳐쇼크를 받은 뒤, 쭉 공룡을 좋아했다. 공룡 이름을 줄줄 외우고, 부모님을 졸라 피규어도 사 모았다. 나이를 먹고 공룡 발자국을 찾으러 가게 됐다. 쥬라기 공원의 진짜 주인공 '렉스'가 포효하는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솔직히 설렌다.


기장에 공룡 발자국이 있다? 부경고사우루스일까?

신평소공원에 도착했다. 임랑과 일광해수욕장을 잇는 해안도로 근처에 있다. 바로 옆엔 칠암항이 있다. 붕장어회가 유명하다. 최근엔 유명 베이커리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생겨 사람들로 가득 차는 떠오르는 '핫플'이다. 2010년 6월 준공된 신평소공원은 배 모양 전망대를 비롯해, 팔각정, 분수대가 있는 3500㎡ 규모의 작은 공원이다. 한반도에 살았던 천년부경용의 학술 명칭은 '부경고사우루스'다. 한반도에 살았던 용각류인데, 이곳에서 그 공룡의 발자국을 찾을 수 있을까? 넓은 '신평뜬방파제'에 주차를 하고 본격적으로 일행들과 함께 공룡 발자국 화석 수색에 들어갔다.


화석인지, 바위인지, 사람이 그려놓은 것인지…

수상한 흔적들이 맹탐정 눈에 들어왔다. 바다를 향해 솟아있는 바위 위, 평평한 표면에 일렬로 울퉁불퉁 솟은 돌덩어리들이 보인다. 멀리서 봐도 '아 저건 공룡 발자국이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이번에 발견된 보행렬, 즉 공룡의 걸음걸이가 드러나 있는 화석이다. 뚜렷이 구분되는 흔적은 여섯 군데 정도다.

해안 절경을 이루고 있는 다른 바위에서도 공룡 발자국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맹탐정 손바닥 두 개를 합친 것보다 훨씬 큰 자국이다. 세로가 길쭉한 타원형 모양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흔적들을 통해 '의심'은 가능했지만, 공룡의 발자국인지 뭔지 '확신'할 수는 없다. 오랜 세월 파도에 의해 바위가 침식되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흔적일 수도 있다.

사실, 신평소공원에는 공룡 발자국 말고도, 백악기 후반의 조류, 식물 등 다양한 형태의 화석이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맹탐정 일행이 그것을 구분할 '눈'이 없다. 그래서 맹탐정 일행의 눈을 뜨게 해줄 선생님(?)을 모셨다.


"자 이제부터 백악기로 시간 여행을 떠나봅시다"

맹탐정 일행이 모시게 된 분은 바로 '부경고사우루스'를 발굴한 백인성 부경대 명예교수다. 기장 신평소공원 일대의 공룡 화석도 백 교수의 연구진이 최초 발견해 발굴작업을 주도했다. 신평소공원 일대의 화석에 관해서는 최고 전문가를 모신 셈이다.

백 교수는 먼저 과거 공룡시대, 지금으로부터 약 9000만 년 전 신평소공원 일대의 지형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맹탐정 일행을 안내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검붉은 빛을 띠는, 주먹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광석이 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벽돌색이다. 주변 바위들과 확연히 다른 색을 띠고 있어 쉽게 구분됐다.

"이것은 선캄브리아 시대 이후 방산충이라는 것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처트(Chert, 규질암)라고 합니다" 쏟아지는 전문용어에 맹탐정이 당황했다.

백 교수는 "쉽게 말해 과거 단단한 성질을 가진 플랑크톤이 모여 만들어진 암석이라고 보면 된다"며 "이 암석의 모체는 우리나라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일본에서 발견된다"고 쉽게 풀어 설명했다. 눈치 빠른 맹탐정이 질문했다. "공룡시대에는 동해가 없고 일본이랑 한반도가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게 그 증거인가요?." 백 교수는 "맞다"며 "1970년대 말 일본을 기원으로 하는 처트가 경북 영덕, 청송층(지층)에서 처음 보고된 후, 바로 이곳에서도 발견됐다"고 말했다.


"지금 밟고 있는 게 공룡 발자국입니다"

맹탐정이 서 있는 곳을 가리키며 백 교수가 말했다. 깜짝 놀라 얼른 발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부경고사우루스의 발자국인가요?" 맹탐정이 약간 흥분해서 물었다. 백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뼈가 발굴되어야 공류의 종류를 알 수 있고, 발자국으로는 구분하기 힘들다"며 "조각류인지 용각류인지 판단은 가능한데, 모양이 둥글고 넓적하며 바로 앞부분에 작은 반달 모양으로 앞발 발자국이 패여있는 걸로 봐서, 네 발로 걷는 용각류 발자국"이라고 설명했다. 조각류는 발가락 3개가 선명하게 찍히는 편이라고 한다.

백 교수에 따르면 발자국 화석은 공룡이 생전에 어디서 살았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백 교수가 이번에는 땅을 가리켰다. "여기 구불구불 굽이치는 물결 모양이 보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자세히 다가가서 보니 교수님의 말처럼, 바위에 마치 빨래판 같은 줄무늬가 새겨져 있다.

백 교수는 "공룡시대, 이 지역에 흐르던 강의 물결 자국"이라며 "근처에서 다수의 공룡 발자국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공룡들이 여기서 강물로 목을 축였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신평소공원 일대가 공룡시대에는 바다가 아닌 강이 있었다는 말이다. 알고 지은 것일까? 신평소공원 근처 식당의 이름은 '리버사이드'다.


신평소공원엔 공룡 발자국만 있는 게 아니었다.

초식 공룡들의 먹이는 당연히 식물이다. 백악기 때 번성했던 식물은 활엽수가 아니라 침엽수와 양치류가 주를 이뤘다. 백 교수는 바위 표면에 새겨진 빨대 굵기의 가느다란 자국을 맹탐정 일행에게 보여줬다. 백 교수는 "이곳에선 식물 화석도 볼 수 있는데 환경이 건조한 지대, 물가에 서식하는 식물 흔적"이라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좁은 바위틈에 남겨진 지층의 모양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녹색과 하얀색을 띠는 두 지층이 평행선을 이루며 이어지다 마치 지문처럼 한번 굽이쳤다. 크기가 작아 쉽게 알아채기 힘들어 보였다. 백 교수는 "지진에 의해 토양이 액상화된 흔적"이라며 "과거 공룡시대 이 지역에서 지진 활동이 활발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룡 화석으로 유명한 고성과 비교하면 기장 신평소공원은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을까? 백 교수는 "기장에선 공룡시대 지질의 상태를 알 수 있는 흔적들이 더 많고, 식물 화석이 발견된 것도 중효한 포인트"라며 "공룡 뼛조각도 발견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압축된 공간 속에 다양한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는 점이다.


<사건결말>

(*맹탐정 개인 의견임. 부산일보의 편집 방향과 무관함)

경남 고성까지 가지 않더라도, 부산에서도 많은 공룡 발자국을 볼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신평소공원 일대가 다르게 보였다. 화석의 종류가 다양하고 크기도 크고 선명해 놀랐다.

신평소공원은 수천만 년 전 생명체의 흔적에서부터, 과거 한반도 지형 변화까지 알 수 있는, 한반도의 공룡시대가 압축된 재밌고 유익한 장소다.

백인성 교수는 신평소공원에 대한 잠재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백악기 후기 공룡시대의 지리, 기후, 생물 등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라며 "도심과 접근성도 뛰어나고 좁은 장소에서 다양한 화석들이 압축적으로 발굴되어 현장 체험학습 장소로 좋다"고 말했다.

다만 '공룡 화석 관광지'로서 아쉬운 점도 있다. 백악기 후기 공룡의 화석이 있는 장소임을 나타내는 표지판도 하나 없다. 해안가에 즐비한 화석들은 '방치'되어 있다.

오시리아 관광단지, 대형 쇼핑몰 등 기장에는 볼거리가 많다. 한반도 공룡시대의 역사를 품고 있는 신평소공원. 공룡을 테마로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강소형 관광지’가 될 수 있다.


<+사족>

부경사우루스가 아니라 왜 부경'고'사우루스 인가요?

교수님을 만난 김에 평소 궁금하던 것은 다 여쭤보기로 했다. 부경고사우루스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백악기 전기 지층에서 발견된 용각류 공룡. 1999년 발굴되어 2001년 명명됐다. 백 교수는 "학교 이름을 따 부경 사우루스(Pukyongsaurus)로 정했는데 영어로 써 놓고 보니 'g'와 's', 자음끼리 붙게 됐다"며 "그래서 중간에 연결어미 'o'를 넣었는데 그러다 보니 부경고사우루스로 읽히게 됐다"고 말했다. 부경고등학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최근에 도서관을 새로 지으며 부경고사우루스의 뼈가 없어졌는데 어디로 갔는지도 물었다. 백 교수는 "사라진 게 아니라 리모델링 관계로 잠시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고, 전시공간이 마련되면 복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