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놓고 ‘자기부정’ 빠진 일본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광산(사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추천을 보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0일 요미우리신문 등은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는 구상을 보류하는 방향으로 조율 중이라고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을 세계 유산으로 추천하더라도 한국의 반발 등으로 내년에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록될 전망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주쯤 방침을 정식으로 확정할 예정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심사에서 한번 탈락시킨 후보가 나중에 다시 도전해 세계유산에 등록된 사례는 없다.
타 회원국 이의 땐 심사 중단
지난해 일본 요구로 제도 변경
올해 입장 반전… 추천 보류 전망
특히 일본 정부가 이같은 결정을 내린 데는 다른 회원국의 이의가 있으면 심사를 중단하는 제도가 큰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이 제도는 일본의 강력한 요구로 지난해 도입됐는데, 이번에 일본이 뒤바뀐 입장에 서게 된 것이다. 앞서 일본 정부는 중일 전쟁 중 일본군이 벌인 만행인 난징대학살 관련 자료를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심사 제도 변경을 주도했다.
이 신문은 “외무성 내부에서는 이번에 일본이 뒤바뀐 입장이 됐고 한국의 반발이 있는 가운데 (사도광산을)추천하면 국제사회의 신용을 잃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전했다. 이 제도는 ‘세계기록유산’에 대한 것으로, 사도광산 같은 ‘세계유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의 반대에도 등재를 강행하면, 일본이 자신의 말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된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현 상황에서는 심사 통과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추천을 보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올 5월 니가타 지사 선거, 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둔 상황이기 때문에 집권 자민당에서는 한국의 반발 때문에 추천을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강경론도 대두하고 있다.
민영방송 TBS 등에 따르면 극우 사관 추종자로 분류되는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은 사도광산이 “일본의 명예에 관한 문제”라며 “(일본)정부는 (세계유산)등록을 위해 진심으로 힘을 내면 좋겠다”고 전날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자민당 최대 파벌 회장인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도 20일 열린 파벌 모임에서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유네스코에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니가타현의 사도섬에 있는 사도광산은 에도 시대(1603∼1868년) 금광으로 유명했으나 태평양 전쟁이 본격화한 후에는 구리·철·아연 등 전쟁 물자를 캐는 광산으로 주로 활용됐다.
이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