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돈의 가치는 환대의 실천에 있다”
김상훈 독자여론부장
지난 20일은 코로나19가 국내에서 발생한 지 만 2년 되는 날이었다. 코로나19가 발발했을 때만 해도 2년쯤 지나면 팬데믹이 마무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최근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기승으로 팬데믹 시대의 끝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양극화의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자영업자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 장기화로 매출이 급감하거나 폐업하는 등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일자리와 임금 양극화는 물론 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른 자산 양극화까지 심화하고 있다. 계층 간 양극화도 심해져 어려운 이웃의 삶은 더 팍팍해지고 있다.
코로나19 2년 넘게 지속
우리 사회에 양극화 그늘
시민·기업 나눔의 실천은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 백신
돈이 가치 있는 순간은
타자를 위해 사용할 때
모두가 코로나19로 깜깜하고 힘든 터널을 2년 넘게 지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지역사회에선 코로나 한파를 몰아내는 희망의 불씨들이 피어올랐다. 지난달 부산의 한 70대 남성이 익명으로 부산사랑의열매에 1억 원을 기부했다. 자신이 운영하던 제조업체를 정리하고 남은 돈을 기부한 그는 고액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마음을 나눌 뿐 특별한 대우를 받기 위해 한 일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부산 기장군 일광비스타동원 2차 아파트 어린이집은 아이들이 착한 일을 할 때마다 100원을 저금하는 ‘100원의 기적’ 캠페인 등을 통해 모은 성금을 최근 사랑의열매에 기부했다. 부산 동주여고 학생들도 스스로 정한 ‘벌금’ 1년 치를 모아 기부했다. 나이와 기부액 규모는 중요한 게 아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를 위한 사회 백신인 나눔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 희망적이다.
지역 기업들도 나눔 대열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부산지역 종합건설사인 (주)동원개발은 지난달 17일 부산사랑의열매 ‘나눔명문기업’ 골드 회원에 가입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상반기 2억 원을 기부했으며, 이번에 골드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3년간 3억 원의 추가 기부를 약속했다. 나눔명문기업은 1억 원 이상 기부하거나 3년 이내 기부를 약정한 기업 고액 기부자 모임이다.
지난달 1일 부산사랑의열매가 시작한 ‘희망2022나눔캠페인’은 오는 31일 마무리된다. 부산진구 송상현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은 매년 희망나눔캠페인의 목표 모금액 1%가 모일 때마다 나눔 온도가 1도씩 올라간다. 1월 21일 기준 나눔 온도는 96.8도. 이날 기준 부산지역 기부금은 99억 7328만 원으로 나눔캠페인 모금액 103억 100만 원 대비 96.8%에 달한다. 이렇게 모인 성금은 코로나19로 인한 신빈곤층의 일상 회복, 위기가정 긴급 지원, 사회적 약자 돌봄, 교육과 자립 지원에 사용된다. 부디 목표인 사랑의온도 100도를 달성해 어려운 이들이 지원을 충분히 받았으면 한다.
지역 기업들은 교육 기부, 프로젝트를 통한 기부금 적립 등 다양한 형태의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주)우성종합건설은 최근 부산 남구와 영도구 지역 어린이에게 진로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 기부에 나섰다. 이 회사는 직업체험 테마파크 키자니아 입장권을 기부했다. 지역 아동센터 어린이와 학부모를 키자니아 부산으로 초청해 약 70개에 이르는 직업체험을 제공할 계획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지속해 학습격차가 커진 상황에서 모든 어린이가 희망을 잃지 않고 미래를 꿈꾸는 기회를 주는 것이 취지다.
건강 프로젝트 방식으로 기부금을 적립한 기업도 있다. (주)경성리츠는 시민의 체중 감량, 기부 트래킹 등 건강 프로젝트 참여로 적립한 기부금을 모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지역본부에 전달했다. 기부금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 아동들의 일상 회복을 돕는 초록우산 사회적백신 프로젝트와 주거 빈곤 아동들의 주거환경개선 사업에 사용된다.
부산 원도심에서 백년어서원을 운영하는 김수우 시인은 산문집 〈어리석은 여행자〉에서 “돈의 가치는 환대의 실천에 있다”고 말한다. 김 시인은 ‘돈이 가치 있는 순간은 타자를 위해 사용할 때이다. 나보다 어려운 누군가를 위해 돈을 내놓는 순간이다. 벌거나 모으는 순간이 돈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한다. 시인은 ‘그 가치의 결정은 돈을 쓰는 순간에 있다. 관계를 회복하는 돈, 사람을 치유하는 돈, 사랑을 표현하는 돈, 서로를 신뢰하게 하는 돈이 돈의 가치를 결정한다. 돈에 마음을 담는 순간, 돈은 살아있고, 또 반짝인다’고 했다.
시인의 말처럼 지역 사회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내민 온정의 손길은 ‘사랑을 향한 소박한 의지’를 담아 ‘일상에 작은 소용돌이’를 일어나게 한다. 그 소박한 의지들이 계속 모인다면 일상을 바꾸는 커다란 물줄기가 될 것이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