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솔로지옥’에 열광한 N포세대
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2030세대는 N포세대라고도 불린다. 처음에는 삼포세대라고 했다.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일컬었다. 그러다가 집, 경력, 인간관계, 희망, 건강, 외모까지 점점 포기할 거리가 늘어나더니 결국은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N포세대가 되었다. 그중 연애가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으로 꼽힌다는 게 씁쓸하다. 신경림 시인이 노래한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라는 반문처럼 삶이 아무리 치열하고 고단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
요즘 짝짓기 예능이 전성기를 맞았다. 비록 나의 연애는 포기했지만 남의 연애는 훔쳐보고 싶은 심리를 정확히 찌른 듯하다. 특히 또래 사이에선 최근 넷플릭스가 방영한 ‘솔로지옥’의 인기가 뜨거웠다. 기존의 커플매칭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솔로지옥’의 인기 비결은 아마도 ‘21세기 MZ세대의 사랑법과 판타지’를 제대로 보여 주고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 본다.
연애조차 포기 강요당하는 2030
새로운 관계에 목말라하는 세대
짝짓기 예능서 대리 만족 느껴
연애는 다양한 인간형 이해하고
차이에 관대해지는 법 알게 해
코로나 시대에도 포기해선 안 돼
‘솔로지옥’은 소위 ‘화끈함(Hot)’을 무기로 한 개방적인 구성과 분위기가 돋보였다. 세대와 사람에 따라서 선정적 혹은 노골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이러한 개방성은 몸매를 과감하게 노출하면서 이성에게 드러내 놓고 섹스어필이 가능하도록 연출한 장면들로 한국의 유교 정서를 시원하게 날려 버렸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와 견주어 자유로워진 성 개방 풍조에 익숙하고 성 문화를 터부시 하지 않는다. 성생활을 자연스럽고 건강한 일상적인 문화로 받아들인다. 연애의 즐거움 중 하나로서 ‘솔로지옥’이 숨기지 않고 드러낸 성적 유혹의 밀고 당기기가 현실 연애 당사자인 2030세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지점이다.
또한 ‘솔로지옥’에 출연한 여성들은 진취적으로 자신의 짝을 찾아가는 자주적인 여성상을 제시함으로써 기성 짝짓기 프로그램들이 내재했던 조신하고 얌전한 여성 이미지의 보수성을 거부했다. ‘솔로지옥’이 낳은 스타 프리지아가 최고의 예시가 될 것이다. 대중이 프리지아라는 인물에 환호했던 이유는 그동안 억눌려 왔던 여성의 자기표현 욕구, 즉 프리지아의 대담하고 솔직한 표현력에 대한 대리만족감과 실제 청춘들의 연애 과정을 편견 없이 담아낸, 그러니까 때론 여성이 연애를 이끌고 능숙하게 주도하는, 이런 요소들의 적극적인 발현으로 보인다. 사랑을 쟁취하는 데 있어 주체적인 당당함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유효한 마음가짐이라고 2030세대는 공유한다.
위와 같은 참신함과 별개로 ‘솔로지옥’ 마지막 회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솔로지옥’ 역시 낡은 연애관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보았다. 마지막 회는 최종 커플을 결정하는 내용이었고 출연자들은 각자가 마음속에 품은 이성을 최종 선택하면 되었다. 그러나 맹점은 남성 출연자가 먼저 여성 출연자를 선택하고 이후 여성 출연자가 자신을 선택한 남성 중 한 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규칙에 있었다. 여성이 호감을 표현했는데 남성이 거절하면 민망할 수 있으니 남성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어서 여성 출연자를 배려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여성은 남성이 먼저 표현해 주어야만 자신의 마음을 밝힐 수 있는 수동적인 역할에만 머물러야 하는 걸까. 남성 출연자로부터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두 여성 출연자는 결국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기회가 없었다. 설령 남성의 선택을 받은 여성일지라도 본인을 선택한 남성 이외에 다른 상대를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프로그램의 파격적이고 유쾌한 이미지가 아쉽게도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지난 13일 데이터 분석 업체인 ‘앱애니’가 발표한 <2022 모바일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소비자가 가장 많이 지출한 앱 7위에 소개팅 앱 위피가 꼽혔다고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데이팅 앱 틴더가 틱톡과 유튜브 다음으로 소비자 지출액 순위 3위에 랭크됐다. 코로나 시대에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막막하고 답답한 현실을 방증하는 지표다.
연애를 포기당한 N포세대가 이제는 연애를 상실당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연애가 주는 기쁨과 설렘이 청춘의 특권이라고 말하지만 학업과 스펙, 취업에 치이고 최근엔 젠더 갈등이 폭발한 젊은 세대에겐 호사스러운 조언처럼 들릴 뿐이다. 그럼에도 소셜매칭 서비스의 가파른 성장세는 새로운 관계에 목마른 우리 세대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 준다. 개인적으로 연애는 행복의 가치를 넘어서 내가 이전까지 마주하지 못했던 다양한 인간형을 이해하고 공부하는 단연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을 포용하고 나와 다른 생각과 기준, 차이에 관대해지는 법을 가장 잘 가르쳐 준 것이 연애였다.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관계 실종 시대에도 부디 연애를 포기하지는 말자. 어쩌면 짝짓기 예능프로그램들을 챙겨 보며 죽어 가는 연애세포를 되살리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