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엑스포 '뜨거운 가슴'만으론 못가져온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박석호 서울정치팀 부장

지난주 중동·아프리카 3개국을 순방한 문재인 대통령은 2030부산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유치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2020월드엑스포가 열리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2030엑스포 경쟁 상대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비해 부산이 도시 경쟁력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도 얻은 듯하다.

국제행사를 유치하려면 다른 나라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잡다단한 국제사회의 관계를 냉철하게 따져야 한다.

문 대통령, 중동 순방에서 열정적 유치 활동
UAE 왕세제, 이집트 대통령 묵묵부답 일관
중동 형제국가 사우디에 기울 수밖에 없어
국제사회의 현실 꿰뚫는 냉철한 접근 필요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 UAE 총리와의 회담에서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한 UAE의 관심과 지지를 당부하고, 두바이 엑스포 유치와 개최 경험을 공유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회담에 앞서 청와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알 막툼 총리는 엑스포 유치 활동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경험 공유 등 엑스포 관련 협력을 긴밀히 해나가자고 했다”는 UAE 측 ‘예상’ 답안이 적혀 있었다.

문제는 알 막툼 총리가 중동의 형제 국가인 사우디의 2030월드엑스포 유치를 지지하는 트윗을 올렸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회담이 끝나자 기자들은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에게 “부산 엑스포 지지 요청에 대한 알 막툼 총리의 반응은 어땠느냐”고 물었다.

그제서야 박 대변인은 “알 막툼 총리는 문 대통령이 말씀하시는 부산 엑스포에 대해 잘 경청하셨고, 그와 관련해서 특별한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고 답변했다. 문 대통령이 부산 엑스포 지지를 힘껏 호소했지만 UAE 측은 외교무대에서 내놓는 의례적 덕담도 하지 않은 것이다.

UAE를 상대로 한 문 대통령의 부산 엑스포 지지호소는 다음 날에도 있었다. 문 대통령은 17일 이 나라 최고 실력자인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제와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왕세제 측 사정으로 취소 통보를 받고 전화 통화를 했다.

문 대통령은 전화를 통해 “두바이 엑스포의 성공 개최를 축하하며, 2030 부산 엑스포를 위해 UAE의 성공 경험을 공유해 주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에 모하메드 왕세제는 “문 대통령이 두바이 엑스포에 직접 참석해서 존재감을 보여주어 감사하며 큰 힘이 되었다”고 우회적으로 답변을 피해갔다.

문 대통령이 UAE 최고위급 인사들과의 대화에서 두 번이나 부산 엑스포 지지를 요청했지만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는 수준의 덕담조차 듣지 못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2030 엑스포 개최도시 선정에 대한 UAE의 입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순방에 동행한 임종석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한두 번의 요청에 대해 공식적인 답을 들을 수 있는 성격의 사안은 아니다”며 “UAE 측은 마지막 순간까지 정치적 언어로 계속 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나름대로 UAE 측의 입장을 설명했다.

임 특보는 청와대 비서실장 시절 우리나라와 UAE의 외교관계 위기를 막후에서 해결했던, UAE 측이 가장 신뢰하는 한국 인사다.

문 대통령은 20일 압델 파타 알시시 이집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부산 엑스포 지지를 요청했으나 뚜렷한 답변을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도 기자들은 박경미 대변인에게 부산 엑스포와 관련한 문 대통령과 이집트 대통령의 대화내용을 물었다. 이에 박 대변인은 "(참모들이 배석하지 않은)단독회담 때 양 정상만 계셨는데, 그때 아마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싶다"고 얼버무렸다.

엑스포 개최지 선정 투표는 국제박람회기구(BIE) 170여개 회원국이 참여한다. 같은 중동 국가인 사우디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UAE와 이집트가 ‘부산을 지지한다’고 명쾌하게 화답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고향인 부산에 월드엑스포를 유치하고자하는 문 대통령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청와대가 외교적 성과를 알리는 데 급급해 국제 사회의 객관적인 현실을 놓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부산 엑스포 유치가 성공하기 위해선 열정적이고 낙관적인 기대보다는, 제3자의 입장에서 국제 질서를 바라보는 냉철함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이번 순방의 성과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번 순방에 동행한 기자가 곁에서 지켜보면서 든 느낌이다. psh21@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