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들어 오는데 노 저을 사람 없다”… 인력난 해법 찾는 거제시
다시 뛰는 K조선
제주도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거제도. 1970년대까지 한적한 어촌마을에 불과했던 거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비결은 조선업이다. 지금은 25만 인구의 70% 이상이 조선업 직간접 종사자이고, 지역 경제의 90%가 조선업을 통해 창출되는 명실상부 조선 도시로 발돋움 했다.
하지만 부침도 많았다. 빅3를 필두로 한 한국 조선은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조선 업계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그런데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로 국가 간 해상물동량이 급감해 세계 조선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빅3도 예외가 아니었다. 신조선 시장이 얼어붙어 조선소 한 곳당 100척 안팎에 달했던 상선 수주가 25% 수준으로 급감했다.
2016년 고강도 구조조정에 숙련공 유출
지난해 수주 몰려 올해 8000명 이상 필요
시 ‘조선업 고용유지 모델’ 복안 제시
기업 토론회 열고 청년 일자리 등 요청
변 시장 “기술인력 양성·신규채용 확대”
곤두박질친 조선업과 함께 지역 경제에도 불황의 공포가 엄습했다. 이때 구세주로 등장한 게 해양플랜트다. 조선산업의 총아로 불리는 해양플랜트는 먼바다에서 원유나 가스를 뽑을 때 기지 역할을 하는 해상구조물이다. 양대 조선소는 2010년부터 한 해 10기 안팎의 해양플랜트를 수주하며 상선의 빈자리를 메웠다.
그러나 오래가진 못했다. 반복건조를 통해 생산 원가를 낮춰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상선과 달리 해양플랜트는 기기마다 설계와 공정이 달랐다. 여기에 잦은 설계 변경에 따른 조업 지연으로 생산 단가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결구 부실 덩어리가 된 해양플랜트는 조선사에 천문학적 손실을 안겼다. 이때가 2015년 전후다. 이후 부실을 털어내고 재기의 발판을 만드는 데 꼬박 3년이 걸렸다. 당시 중국은 물론 일본에까지 밀려 세계 3위로 주저앉았던 한국 조선은 2019년 반등에 성공했다. 하지만 다시 코로나19가 덮쳤다. 겨우 기지개를 켜는 듯했던 시장은 다시 얼어붙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량 실업 위기까지 닥쳤다. 2년 넘게 이어진 수주 공백 후유증 탓이다. 설계, 자재 확보 기간 등을 고려하면 수주한 일감이 현장에 풀리려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 걸린다. 일감은 쌓였는데, 당장 할 일이 없어진 셈이다.
결국 중소 협력사를 중심으로 또다시 감원 칼바람이 불었다. 2020년에만 거제지역 협력사 500여 곳 중 100여 곳이 휴·폐업했고, 종사자 5000여 명이 실업자 신세가 됐다. 여기에 향후 1만 명 이상이 추가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왔다.
문제는 이 과정에 숙련공이 대거 유출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었다. 우려가 현실이 되면 기술·생산 경쟁력 저하는 물론, 정작 일감이 들어왔을 때 일할 사람이 없게 된다. 실제 2016년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거제지역 조선업계는 2018년을 기점으로 수주가 늘자 ‘인력난’ 역풍을 맞았다.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거제시가 내놓은 복안이 ‘거제형 조선업 고용유지 모델’이다. 과거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고용 창출에 목적을 뒀다면, 거제시는 고용 유지에 초점을 맞췄다. 돌아올 수주 회복기에 대비하고, 수주한 물량이 현장에 풀릴 때까지 현장 노동자 유출 최소화를 최우선 목표로 잡았다.
이를 위해 국비 등 700억 원을 투입, 고용과 경영안정 그리고 동반성장에 필요한 4개 분야 9개 지원 사업을 병행하며 노동자와 사업자가 함께 보릿고개를 넘기로 했다. 사업 효율을 극대화하려 노사정이 함께하는 상생협약도 체결했다.
시행 초기만 해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지만, 현장에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며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지난 연말 기준으로 227개 협력사 소속 노동자 7454명이 고용유지 모델을 통해 실직 위기를 넘겼다.
이제 관건은 인력 수급이다. 현장에선 작년 수주 물량 건조가 본격화하는 하반기부터 인력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한다. 산업통상부의 ‘조선업 생산직접직 인력 대비 향후 필요인력’를 보면 거제, 부산, 울산, 전남을 중심으로 2022년 4분기(10~12월)까지 최대 8000명 이상의 인력이 더 필요하다.
이에 거제시가 한 번 더 발 벗고 나섰다. 연초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을 찾은 변광용 거제시장은 인력수급 문제 해결에 책임감을 느끼고 더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21일에는 기업 토론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시는 이를 토대로 3월 추가 상생협약을 준비 중이다. 이번 협약에선 청년 일자리 창출 모델사업과 신규인력 유입을 위한 주거·정착 지원 등 기존 고용유지 모델의 빈틈을 채우는 데 집중한다.
변광용 시장은 “수주 회복기를 맞아 인력의 적기 수급에 애로가 많고, 동종업계 간에도 인력확보 경쟁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노동자들의 장기근속을 유도하면서 기술인력 양성과 신규채용을 확대할 방안에 대해 시가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김민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