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정치권은 선관위 중립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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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정치적 이해관계 떠나 ‘공정한 선거 룰’ 준수해야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이 4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 각 정당 후보들의 공약 발표와 홍보 경쟁이 갈수록 불을 뿜고 있다. 후보 간 치열한 경쟁만큼 그들의 가족과 관련한 의혹 제기 등 변수도 산재해 역대 어느 때보다 승부를 가늠하기 힘든 선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게다가 대선이 끝나면 곧이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는 온 나라가 선거 바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전국 단위의 선거가 줄줄이 이어지는 이때 가장 주목받는 국가 기관이 바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다.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를 위해 세워진 기관인 만큼 그 임무와 구성원 등은 최고 규범인 헌법 제114조에 엄격히 규정돼 있다. 하지만 새로운 국가 권력이 창출되는 과정을 관리하는 선관위의 업무상 여야 각 정파로부터 편향성 시비에 휩쓸리는 일도 적지 않다. 최근 조해주 선관위 상임위원의 연임·사퇴 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진 여야 간 공방과 선관위 내부의 집단 반발 등 일련의 논란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조해주 상임위원 사퇴 반려
선관위 중립성 논란 도화선
국힘 “친여 성향 장악 꼼수”
문 대통령, 결국 사표 수리
조직 내 영향력 큰 상임위원
직원 인사권 등 막강한 권한
선관위원 추천 편향성 시비
여야 모두 자유롭지 못해
정파 논란에 위원 2명 공석
중립성 유지, 민주주의 근간
공정한 대선·지선 관리 위해
직원들 책임의식·정체성 필요

■대통령과 정치권이 논란 불러

선관위를 둘러싼 이번 논란은 조해주 선관위 상임위원의 사퇴 반려가 도화선이 됐다. 친여 성향으로 분류되는 조 위원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선관위를 떠날 뜻을 밝혔지만,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몇 차례 반려하면서 촉발됐다. 청와대는 대선 등 선거가 임박한 상황에서 선관위 조직의 안정을 고려했다는 설명이지만, 국민의힘은 친여 성향의 위원들로 선관위를 장악하려는 꼼수라며 반발했다. 여기다 2900여 선관위 전 직원들이 대통령의 결정에 반대하며 조 위원 연임에 반기를 드는 선관위 60년 역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 문 대통령이 중동 순방 중 조 위원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공정한 선거 관리를 여러 차례 강조해 온 문 대통령이 직접 이번 일에 관련되고, 선관위 직원 모두가 집단행동으로 의사 표시를 하는 등 조직 전체가 술렁거렸던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선관위의 공정·신뢰성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려선 안 되는 민주주의 기준 축이기 때문이다.



■선관위 상임위원이 뭐길래…

선관위는 헌법 규정에 따라 9명의 선관위원으로 구성된다. 대통령이 3명을 임명하고, 국회가 3명을 선출하고, 대법원장이 3명을 지명한다. 중립성 훼손을 막기 위해 입법·사법·행정부가 나눠서 추천하고, 국회 인사청문회의 엄격한 과정을 거친다. 임기는 6년이다.

그런데 대법관이 겸직하는 선관위원장을 포함한 선관위원 대부분은 비상임이다. 이 때문에 평소 선관위원장을 보좌하면서 선관위의 실질적인 사무를 통괄·조정할 역할이 필요하다. 이를 상임위원이 맡는 것이다. 선관위 수장은 선관위원장이지만, 실질적인 업무는 상임위원을 통해 이뤄지는 시스템이다. 선관위 직무 관련 내부 규정을 보면 상임위원은 사무처 직원의 인사와 사무에 관해 보고를 받거나 조정하는 등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다른 선관위원보다 영향력이 큰 상임위원은 통상 대통령이 임명한 3명의 위원 중에서 정한다. 임기는 선관위 시행규칙에 따라 3년으로, 선관위원의 6년에 비해 절반에 불과하다. 권한이 큰 만큼 임기가 짧고, 선관위 중립 유지를 위해 3년 뒤엔 물러났던 것이다. 1999년 이후 상임위원은 모두 임기 이후 비상임 선관위원을 맡지 않는 게 관례로 굳어졌다. 이번 상임위원 논란은 이를 깨뜨리려 했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 피장파장

국민의힘이 조 상임위원의 선관위원 연임에 발끈한 것은 현재의 선관위원 구성도 한 이유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현재 7명의 선관위원 중 6명을 친여 성향으로 분류한다. 문 대통령이 임명한 2명과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한 3명,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1명까지 6명이다. 나머지 1명은 여야 합의 추천 인사다. 엄격한 중립 인사인 선관위원의 정치적 성향을 따지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만, 추천 과정과 예전 이력 등을 통한 정치권의 분류가 그렇다.

국민의힘은 이런 상황에서 조 상임위원이 다시 선관위원이 되면 선관위원의 친여 성향이 강해질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게다가 조 상임위원은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의 특보 출신으로 임명 당시부터 야당의 거센 반발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논란은 사실 국민의힘도 비껴가지 못한다. 국민의힘이 야당 몫으로 추천한 문상부 선관위원 후보자 역시 국민의힘에 입당한 당원이었다. 지난해엔 국민의힘 대선 경선관리위원으로 활동했다. 이 때문에 국회 인사청문회를 마치고도 여당의 반대로 임명을 받지 못했다. 문 후보자는 조 상임위원이 사퇴한 직후인 지난 22일 후보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이처럼 여야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휘말리면서 선관위 정원 9명 중 2명이 현재 공석이다. 정치판 한가운데서 중심을 잡아야만 하는 선관위의 힘든 처지와 중립의 당위성을 잘 보여 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선관위 중립성은 국익 인식 필요

선관위원의 중립성 논란은 예전에도 종종 있었다. 이전 정권에서도 특정한 당적 전력이 있는 인사가 선관위원이나 상임위원으로 임명돼 편향성 시비가 일었다. 이번 조 상임위원 논란도 마찬가지지만, 다행스러운 점은 선관위 직원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이다. 공정한 선거 관리를 책임진 헌법 기관의 직원으로서 정체성과 책임 의식을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각인하는 계기가 됐다. 그나마 이번 사태를 통해 거둔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여야 정치권도 선관위의 중립성을 보다 큰 틀에서 새겨야 한다. 정치권의 협의에 따라 임명된다고 해서 선관위원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자로 여기면 안 된다. 그렇다면 이는 선거 제도 자체를 무너뜨리는 일과 다름없다. 선관위의 중립성이 흔들린다면 선거로 창출된 국가 권력의 정당성 역시 흔들리게 된다. 어느 정파든 선관위 중립성에 대한 경의와 존중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이유다.

매번 대통령 선거 등이 끝날 때면 일부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곤 한다. 선관위와 선거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뒤흔드는 일이지만, 다행히 지금까지 크게 부각된 적은 없었다. 선관위 중립성에 대한 믿음이 있어 가능했다. 이게 바로 국익이라고 할 수 있다.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정치권은 특히 이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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