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간밤에 쓴 편지
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SNS는 인생의 낭비다!” 박지성 선수가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동할 당시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이 한 말이다. 이 말에 동의하는 분도 계시고 동의하지 않는 분도 계시겠지만, 나도 SNS를 전혀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다지 열성적이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SNS를 기웃거린 적은 있는데, 어느 순간 느낀 바가 있어서 절연해 버렸다. 다른 사람의 글에 불쾌감을 느껴서 내가 왜 사서 싫은 꼴을 당하는가 싶은 경우도 있고, 반대로 다른 이들에게 무례할 수 있는 글을 올렸다가 후회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손 편지가 마음을 전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일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밤에 쓴 연애편지는 보내지 말라고들 했다. 꼭 연애편지가 아니더라도 늦은 밤 나도 모를 열정으로 쓴 편지든 철없는 객기에 들떠 격분에 차 쓴 글이든 간에,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내가 쓴 편지를 다시 읽어 보노라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던 적이 많다. 내게는 SNS가 꼭 그렇게 조심스럽다. 물론 SNS를 하는 분들이 모두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그렇다는 말씀일 뿐이다. 인터넷에는 재미있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한 사건들이 종종 올라온다. 가령 훔친 돈을 SNS에 올렸다가 잡힌 도둑들 이야기가 그렇다. 도둑질뿐 아니라 자신이 한 나쁜 일이나 어리석은 일들을 자랑삼아 올렸다가 망신을 당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경우는 SNS의 순기능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현명한 짓은 아닐 터다. 한 재벌기업의 후계자가 SNS에 공산당이 싫다고 올렸다가 괜한 소란을 일으킨 일이 있다. 당사자가 사과하고 SNS를 끊겠다고 했지만, 그 사과가 진심인지는 모르겠다.
한 기업인 ‘공산당이 싫다’ 파장
외교와 경제 분야에 부정적 영향
국내 경제 위협 ‘오너 리스크’
적절한 감시·견제 장치 없어
기업 수장의 말 한마디 파장 커
언행에 보다 신중하고 현명해야
해외투자에 관한 경영학 교과서를 보면 컨트리 리스크(country risk)라는 말이 나온다.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위험이라는 뜻이다. 컨트리 리스크에는 종교나 인종문제로 인한 갈등도 있고 자연재해의 위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바로 남북관계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위협이 가장 심각한 컨트리 리스크다. 공산당이 싫다는 이 재벌기업의 부회장님도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에 화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기업의 주가가 비슷한 수준의 외국기업의 주가에 비해 낮게 형성되는 현상이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역시 남북관계로 인한 지정학적 불안요인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주요한 이유다. 이분의 말씀을 그대로 옮기면 사업하면서 얘네(?) 때문에 이자도 더 줘야 하고 미사일이라도 쏘면 투자가 다 빠져 나가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기업 활동을 하는 분이 더 잘 알겠지만 이분이 빠뜨린 이야기가 있다. 미국이 우리 옆에 있다고 위험이 아니고 영국이 우리 옆에 있다고 위험이 아니듯이 북한이 우리 옆에 있다는 것이 곧 우리나라의 컨트리 리스크는 아니다. 남북관계가 불안하고 긴장상태기 때문에 리스크가 있는 것이다. 남북이 평화협정을 맺고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경제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협력을 확대해 나간다면 북한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아니라 반대로 코리아 프리미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정부가 온갖 난관에도 불구하고 인내하면서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애쓰는 것이다. 컨트리 리스크는 모든 나라에 있지만, 우리 기업들에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리스크가 있다. 바로 오너 리스크(owner risk) 즉 오너들의 불법이나 일탈 때문에 일어나는 위험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우리 기업들에 오너의 부적절한 언행을 감시하고 견제할 기능이 없는 데서 나오는 위험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니 공산당을 싫어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다만 대기업의 후계자인 분이 SNS에 아무 말이나 던져서 남북관계에, 또 주요한 교역대상국과의 외교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이만큼 심각한 리스크가 없다. 간밤에 쓴 편지는 꼭 다시 읽어 본 다음에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