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빛과 어둠의 공존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영화평론가

변성현 감독은 상투적인 소재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풀어내는 데 재능이 있다. 현실 연애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 ‘나의 PS 파트너’도 그랬지만,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조폭과 액션이 가득한 남성 영화의 전형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느와르 영화를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그리고 5년 만에 내놓은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감각적인 촬영과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색다른 영화를 탄생시켰다. 대선 정국에 개봉한 ‘킹메이커’는 실존 인물들의 정치적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기에 소위 정치색이 짙은, 정치영화가 아닌지 색안경을 끼고 보게 한다. 하지만 영화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보다는 인물들의 신념이나 관계를 더 내밀하게 포착하는 영화에 가깝다.

대선 앞두고 개봉 ‘킹메이커’
대의와 정당성 앞세운 정치인
그림자처럼 숨은 선거 전략가
둘의 신념·관계 내밀하게 포착



영화는 1960~1970년대 당시 신민당 후보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1961년 강원도 인제의 보궐선거부터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을 모티브로 가져왔다. 영화만큼이나 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을 다뤘기에 그를 우상화한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감독이 밝힌 것처럼 이 영화는 감동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한 정치·영웅영화와는 결이 다르다. 영화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뿐 아니라 내러티브 선거전의 달인으로 불렸던 엄창록과의 ‘관계’에 더 시선이 가기 때문이다.

빨갱이라는 말 한마디로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던 1960년대, 이북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으며 세상에 나설 수 없었던 ‘서창대’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젊은 정치인 ‘김운범’을 만나면서 그를 따르기로 결심한다. 이미 여러 번 낙선의 경험이 있는 김운범의 캠프에 들어간 서창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거를 준비한 끝에 그를 국회에 입성시킨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큰 뜻을 가진 두 사람이 동지가 될 수 없음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서창대는 어떤 비열한 방식을 쓰더라도 선거에서 이겨야만, 정치를 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라면 김운범은 승리에는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펼치며 공정한 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에, 두 사람은 함께 갈 수 없다. 달리 말해 김운범은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면 그 어떤 대의도 펼칠 수 없기에 잠시 현실과 타협했을 뿐이다. 그로 인해 김운범은 선거가 끝나면 휴식을 핑계로 서창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가, 선거 시즌이 되면 다시 돌아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에서 두 인물의 대비되는 성향을 빛과 어둠을 통해 표현한다. 김운범이 언제나 빛(스포트라이트) 속에 존재한다면, 서창대는 그의 그림자로 어둠 속에 숨어있다. 즉 어둠은 빛을 더욱 밝게 만들지만, 빛이 밝아질수록 서창대라는 존재는 어둠 속에 잠식되어 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연출은 두 인물의 관계를 밀도 있게 조명한다. 다음으로 영화에서는 선거 시즌이 되면 당연하다는 듯 이어지는 흑색선전과 네거티브 공방전을 한 편의 콩트처럼 풀어낸다. 치열한 선거전은 현실에서도 보기 불편하지만 영화에서는 후원금만으로는 선거를 치를 수 없는 야당 운동원이 여당 운동원 행세를 하면서 표를 얻어가는 과정을 경쾌하게 보여주는 등 웃음코드도 놓치지 않는다.

어린 시절, 결과보다 과정이 좋으면 패배해도 괜찮다고 배웠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패배란 미래가 사라지는 두려운 일이라는 걸 몸소 깨우친다. 영화는 김운범의 선거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승리와 패배, 결과와 과정, 정의로운 대의는 가능한가라는 문제제기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삶을 반추하는 것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