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경남도청 소재지
경상도는 신라 고도인 경주(慶州)와 상주(尙州)의 앞글자를 합친 지명이다.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로 행정적으로 나뉜 건 1896년(고종 33년). 고종은 조선의 23개 부를 폐지하고, 경상도 등 전국 8도 일부를 남북으로 구분한 13도제를 시행하는 칙령을 공포했다. 이때 경남도를 관할하는 관청인 관찰도의 소재지는 진주로 정해졌다. 당시 이곳은 지방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는 관아가 있는 큰 고을이면서 고위 군직인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배치된 경상우병영이 설치돼 있었던 게 주효했다.
경남도청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부산으로 이전한다. 앞서 1924년 말부터 도시의 쇠퇴를 우려한 진주 주민들의 저항이 격렬했다. 하지만 경부선 철도 기종점인 부산역과 부산항을 이용해 식민 지배와 수탈을 강화하려는 일제의 강력한 추진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의 경남도청사는 자혜병원 신축 건물(현 동아대 부민캠퍼스)을 용도변경해 사용했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두 차례 부산으로 피란한 임시수도의 중앙청 기능을 병행했다.
1963년을 전후해 경남 최대 도시이던 마산과 진주에서 도청 유치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해 부산이 직할시가 되면서 경남에서 분리됐기 때문. 유치전은 과열된 나머지 두 도시의 극심한 갈등을 빚자 유야무야됐다. 경남도청은 1983년에야 창원으로 옮겨 가 부산에 이전한 지 58년 만에 경남으로 되돌아갔다. 창원이 산업화를 위한 공업도시이자 계획도시로 설계된 덕분에 도청 이전 계획 수립과 청사 부지 확보가 수월했던 까닭이다. 이어 경남도는 2015년 동·서경남 균형발전 차원에서 진주에 서부청사를 개설해 업무 일부를 이관했다.
최근 진주시가 도청의 진주 환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는 창원이 지난달 13일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 대우를 받는 특례시로 승격한 데 이어 경남 김해·양산시와 울산 울주군이 경쟁 중인 부울경 메가시티 청사 유치에 가세하기로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진주는 낙후한 서부경남의 발전 필요성과 옛 도청 소재지라는 점을 내세워 도청 이전을 촉구한다.
관청 유치 움직임은 신청사 일대 유동인구 증가와 상권 형성을 통해 도시 발전과 경제 성장을 이룰 목적이므로 충분히 이해된다. 그런데 지역 갈등은 금물이다. 도청 이전 문제에 대한 경남도와 진주, 창원·진주 간 갈등은 물론 부울경 메가시티 청사의 소재지를 둘러싼 경남·울산 간 마찰 조짐이 있어 걱정돼서다. 동남권 경쟁력을 키우려는 메가시티 출범을 앞두고 협치와 상생의 자세가 요구된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