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우고 긁어내 그리기의 원형으로 돌아가다
문성식 개인전 ‘Life 삶’ 국제갤러리 부산점
‘긁어내다. 휘두르다. 게워 내다.’
작업을 이야기하는 단어가 달랐다. 작가의 신작 유화 드로잉도 남달랐다. 문성식 작가는 두껍게 바른 유화 위에 연필로 바탕을 긁어내는 그림을 그렸다. 유화와 연필이라는 단순하고 오래된 재료를 이용한 그림. 문 작가는 인간의 원초적인 그리기를 이야기했다.
연필로 유화 바탕 긁어낸 드로잉
산수화 게워 내서 재해석한 작품
삶의 다양한 풍경 담은 유화까지
“인간이 하는 표현 행위 중 긋는다는 것은 인류 시작부터 있었죠. 도상을 그어서 자국을 남기는 것이 그림이 됩니다. 드로잉할 때의 마음은 그리기의 원형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죠. 최소의 환경에서 나라는 사람을 휘두르는 방법, 즉 변수는 저 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거죠. 제가 자라면서 생긴 미감이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밖에 없는 상태죠.”
문성식 개인전 ‘Life 삶’이 부산 수영구 망미동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28일까지 이어진다. 이번 전시에서 문 작가는 100여 점의 유화 드로잉 시리즈 신작을 공개했다.
‘Life 삶’은 2019년 공개한 기법의 완성도를 끌어올린 가운데 ‘미묘한 차이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다양한 실험’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자리다. 문 작가는 캔버스 바탕에 일종의 종이죽을 올리거나 젯소를 발랐다. 유화도 한 번만 작업한 것이 있고, 완전히 건조한 뒤에 다시 올린 것도 있다. 이런 작업은 단순한 재료에 변수를 더하고, 긁어내는 그림을 그릴 때 ‘저항’을 만든다. 종이죽을 안 바른 것은 요철이 없어 동적인 선이 강하게 들어가고 연필 흑연도 더 잘 녹는다.
“어떤 것은 아름다워서, 어떤 것은 퍽퍽해서, 어떤 것은 의미심장해서 그립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 ‘이거 좀 보라’는 메시지다. 문 작가는 생경한 것, 본 듯하지만 보지 못한 것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유화 드로잉 작업 중간중간 그린 구아슈화 9점도 있다. “화면의 모든 부분을 어루만지고 휘둘러서 이야기를 만들어요. 유화는 반(半)젤리 상태라서 그 휘두름이 고착된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죠.” 이번 전시에는 2021년 전남 국제 수묵비엔날레에 출품한 ‘그저 그런 풍경: 땅의 모습’ 연작도 선보였다. 그는 “내가 만나는 작품·장면·사건이 내면에 흡수되어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고, 그것을 게워 내서 화면에 새겨 넣는다”며 ‘제비가 제비집을 짓는 느낌’으로 작업한다고 했다.
대형 장미 시리즈인 ‘그냥 삶’은 연필이 아닌 칼로 긁어낸 작업이다. 벽화의 질감과 민화의 구도감을 혼합해 ‘지금 사람과 지금 정서’를 표현했다. 장미가 시드는 모습에서 ‘삶의 궤적’을 읽어낸 작품으로, 거미는 죽음을 상징한다.
문 작가는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만 25세 최연소 작가로 참여했다. 너무 빨리 주목을 받은 만큼 심적 부담도 컸다. “노하우를 쌓을 시간이 고여 있어야 하는데, 갓 졸업한 대학생이 무슨 노하우가 있었겠어요. 작가는 솔직하고 진실되고 꾸준해야 해요. 그래야 그림에서 응축된 아웃풋이 나오거든요. 그림만 그리면 그릴 것이 없어지니까, 일상에 노출되는 시간을 억지로라도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051-758-2239.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