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도박 같은 입시”… ‘평생 교육 시대’ 고려한 시스템 절실
2022학년도 대입 결산 좌담회
사상 첫 문이과 통합수능과 출제오류 논란, 정시 확대와 이과생의 ‘문과침공’ 등 2022학년도 대입은 수능 체제 이후 가장 혼란이 컸던 해로 꼽힌다. 8일 정시모집 (최초)합격자 발표가 마무리되는 가운데, 부산지역 입시 전문가들과 올해 대입을 결산하는 자리를 가졌다. 곽옥금 동명대 입학처장, 권혁제 부산시교육청 중등교육과장, 오태환 부일에듀 대표, 이성준 부산진로진학지원센터 대입지원관이 함께했다.
-2022학년도 입시의 가장 큰 특징은?
△오태환=수능 문이과 수학 일원화가 가장 큰 변화다. 이로 인해 문과생들은 속된 말로 폭망했다. 수학 1등급이 1만 8031명인데 이 중 문과생(확률통계 선택자)이 2000명이 채 안 된다. 부산대를 비롯해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인문사회계열을 전부 이과생이 장악해버렸다. 우리나라 입시 사상 이런 일은 처음이다.
△곽옥금=학생 선택권을 강화하겠다는 정책 의도였는데, 문이과 통합수능 때문에 결국 ‘전략 싸움’이 돼버렸다. 한 학생은 ‘둘 중 하나만 합격하자’는 생각으로 같은 대학 기계공학과(자연계)와 경영학과(인문계)를 동시 지원했다고 한다. 진짜 올해는 도박 같은 입시였다.
△이성준=갑자기 공정성이 화두가 되면서 교육부의 사실상 강제에 의해 정시가 확대됐다. 그 결과 소위 이과생의 ‘문과침공’이 현실화했다. 수학에서 좀 더 유리한 고지에 오른 학생들의 선택 카드가 많아지면서 ‘진로·적성 중심’ 원칙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권혁제=학생들이 진로·적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정시 확대 정책 때문에 반대로 가고 있다. 학생들이 오히려 수능에 매달리고 진로·적성과 상관없이 점수 따기 좋은 과목을 선택한다. 수능과 현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게 올해 입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수능 중심 ‘정시 확대’ 부작용이 큰 듯한데?
△오태환=재작년 수능 1~2등급 합산비율을 보면 국어는 졸업생과 재학생이 거의 3배 차이가 난다. 특히 남학교보다 이과생이 적은 여학교의 충격이 크다. A여고의 경우 작년에 수능 수학에서 1등급 받은 학생이 9명이었는데, 올해는 1명에 불과하다.
△이성준=하루에 국·영·수·사회·과학 모든 과목을 객관식 중심으로 평가하는 시험은 더 많이 연습하고 집중한 학생들에게 훨씬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최근 들어 오히려 상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반수’가 일상화 돼버렸다. 고등학교 교육의 비정상화를 넘어서 대학 교육에서도 균열이 생겼다.
△곽옥금=수도권 대학 정시 비중이 올해 35% 정도다. 수시 비중이 줄어들어 경쟁이 치열해지니까 결국 정시 준비하는 학생이 많아졌다다. 줄세우기가 제일 공정하다고 생각하지만, 전체를 보면 아니다. 진로나 적성을 찾아서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던 아이들은 오히려 기회가 줄어들었다.
△권혁제=정부 정책이 항상 문제가 생기면 대책만 세운다. 공정성이란 문제가 생기니까 대안으로 정시확대를 내세웠는데, 학생들은 점수 딸 수 있는 과목 위주로 선택한다. 공대 가고 싶더라도 물리를 선택 안 한다. 이게 가장 심각한 문제다.
-수능 제도에 대한 비판도 있는데?
△권혁제=94년부터 몇 십 년 계속된 수능은 이제 수명이 다했다. 더 이상 창의적인 문제로 아이들의 역량 평가할 수 있는 시험이 아니어서, 출제오류도 생긴 것이다. 성적표를 받았는데 점수가 공란인,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곽옥금=학생들에겐 학력뿐만 아니라 다른 역량도 개발되고 있다. 그걸 인정해주는 대입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창의성, 주도성 등 다른 역량이 너무나 많은데 왜 입시는 학업 역량만 평가하나.
△이성준=정시의 장점은 숫자로 모든 걸 비교할 수 있는 간편성이라고 다들 인식하고 있다. 근데 막상 지원하는 단계가 되면 가·나·다 군의 어느 대학을 선택할지부터 시작해 변환표준점수·표준점수·백분위 등을 따져야 해, 정시보다 더 복잡한 체계도 없다. 이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논의해야 하는데 학부모들은 ‘내 아이에게 유리한 미적분을 시켜야겠다’고만 생각한다.
△오태환=슬픈 일이다. 인문계열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수학 성적을 왜 요구하나. 수능은 수명이 다한 과거형이며 이제는 미래형 교육이 필요하다. 이미 서울대, 과기원 4곳, 포항공대는 수능과 관계없이 선진국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입시제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오태환=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바뀐다. 대통령 후보들이 선심 쓰듯 정시 비율 몇 % 늘리겠다고 할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처럼 교육 관련 전담기구를 완전히 독립적으로 설치하고 평가원도 그 산하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 아무도 청사진을 제시 못하고 있다.
△권혁제=미래형 인재를 키우려면 지역대학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에는 상위 30%만 대학에 갔다면 지금은 평생교육 시대가 됐다. 아이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역량 키워주는 게 필요하다. 지역대학도 자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올해 부산가톨릭대학이 정원을 감축하고 학과 구조 조정을 한 결과 경쟁률이 확 올라가는 성과를 냈다.
△곽옥금=인재라는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바뀌어야 한다. 결국 다시 돌아가면, 정시가 아니라 학생부 종합전형이 옳았다는 얘기다. ‘고등학교 생활을 열심히 한 친구들이 좋은 데서 잘 살고 있더라’는 결론이 나오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이성준=세상도 아이들도 환경도 모든 것이 바뀌고 있는데 합격을 가르는 기준만 계속 수능 성적으로 가고 있다. 부산지역 학생들은 의대·치대·한의대·약대, 간호사·공무원·교사만 얘기한다.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좀 더 다채로워졌으면 좋겠다.
-지역 차원에서 보완할 점이 있다면?
△오태환=제일 중요한 1단계가 국·영·수 성적보다 진로다. 우리나라 직업 수가 1만 2000개인데 미국은 3만 개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분업이 덜 활성화된 분야나 미래 유망 분야를 중심으로 진로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권혁제=‘우리 아이가 스카이(SKY) 안 가도 되니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 학생이 자기 진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진로교육’이 중요하다. 학과 양극화 문제도 진로교육으로 풀어야 한다.
△곽옥금=지역산업과 관련된 진로교육은 교사들이 잘 알아야 한다. 우리 지역에 어떤 산업이 있고 취업 장이 얼마나 열려있는지 아이들에게 안내가 되면 지역 안에서 순환이 된다. 대학도 함께하면 더 많은 정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오태환=이제는 부산시 차원의 많은 지원이 있어야 한다. 기장군 교육예산이 100억 원이 넘는데, 나머지 15개 구를 합친 것보다 많다. 이런 불균형을 해소해줄 필요가 있다.
△이성준=대입정보는 학부모가 아니라 학생들이 알아야 한다. 학부모에 의해서 아니라 학생이 자기의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된다.
-2023학년도 대입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권혁제=2023학년도 키워드는 ‘양극화’다. 수도권 주요대학은 정시 비중이 40%가 넘는데, 비수도권 지역대학은 수시모집이 86~87% 정도로 엄청 늘어난다. 전형에서부터 양극화가 발생한다.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에 따라서 학생들이 움직이는 문제 역시 내재돼 있다.
△오태환=서울 주요대학은 정시 수능전형이 가장 많지만, 지역대학은 수시가 가장 넒은 문이다. 이쪽도 하다 안 되면 저쪽으로 하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목표를 뚜렷하게 잡아야 한다.
△곽옥금=내년에도 ‘정시 40%’의 여파가 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시와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은 남아 있다. 여전히 원하는 대학, 희망 학과를 가기 위해서는 학교생활을 열심히 해야 한다.
△이성준=지금이 혼란의 끝이 아닌 것 같아 전망이 더 우울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말하면 ‘쫄지 마라’.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본인의 선택을 믿었으면 좋겠다.
정리=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