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시대 문화풍경] 까사 베르디, 베르디 최후의 작품
부산대학교 강사
바야흐로 졸업 시즌이다. 졸업은 끝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 아니던가. 이날을 맞은 청년들의 마음자리가 무겁다. 예술 전공자들의 고민은 한층 깊다. 로버트 드 니로의 뉴욕대 예술대학 졸업사 첫머리는 축사라기보다는 우울한 위로에 가깝다. “여러분, 해냈군요, 그런데 엿 됐어요!(You made it, and, you’re fucked!)”. 삶의 전환점이란 어떻게 다가오는가. 제아무리 열정을 다해 재능을 갈고 닦아도, 그야말로 혼을 갈아 넣어도 전공을 살려 취업할 확률은 낮다.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오디션을 통과하기도 쉽지 않다. 경쟁이 치열하니 실력만으로 장담할 수 없다. 중압감이 그들의 자부심을 숫제 꺾기도 한다. 로버트 드 니로의 표현대로 “일생에 걸친 거절의 문”이 열리는 셈이다.
예술가의 빈곤한 삶이나 안타까운 죽음은 비단 지금 여기의 현실만은 아니다. 일자리가 극히 적기도 하거니와 예술 활동은 생산성이 매우 낮다. 누가 나선다고 온전히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 문제다. 오페라의 거장 베르디의 실천은 작지만 큰 울림을 준다. 그는 은퇴한 음악인들을 위한 안식처(Casa di riposo per musicisti)를 지었다. 흔히 까사 베르디(Casa Verdi)라 부른다. 1899년 완공했으나 생전에 운영하지 않았다. 스스로 우쭐하지 않도록 경계했던 까닭이다. 그의 사후 첫 생일인 1902년 10월 10일, 처음으로 9명이 입주했으며 지금껏 천여 명의 예술가가 이곳에 깃들었다. 음악가뿐 아니라 예술을 직업으로 삼았던 ‘예술 노동자’가 입주 대상이다. 최근에는 밀라노의 가난한 학생들에게도 문을 열고 있다. 베르디의 유산과 저작권료, 후원금으로 운영한다. 까사 베르디는 그저 저물어가는 예술가들의 안식처가 아니다. 언제나 음악이 흐르고 예술 활동이 펼쳐진다. 그들의 예술이, 예술적 생애가 생명력을 한껏 유지하는 공간이다. ‘은퇴’라는 말이 환기하는 단절과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과 예술적 영감으로 출렁인다. 다니엘 슈미트의 다큐멘터리 영화 은 이들에 대한 헌사다. 세월의 풍화에도 쉽게 변하지 않는, 생애 가장 빛나던 나날의 열정이 가슴을 적신다.
베르디는 예술가들에 대한 지극한 동료애를 담아 까사 베르디를 남겼다. 베르디 최후의 작품이자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다. 그는 이 가난한 동료들을 “운이 덜 좋았던” 사람들이라 했다.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이 인생이다. 성공한 예술가, 이른바 잘 나가는 예술가란 보이지 않는 문화자본과 문화권력이 작동한 결과물일 수 있다. 경계하고 삼갈 일이다. 이 시대 젊은 예술가들이 처한 ‘덜 좋은 운’을 함께 메워가는 지혜와 실천이 그립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 했던가. 이즈음 교문을 나서는 젊은 예술가들이 가질 법한 마음자리다. 그들이 엿 되지 않을, 엿 먹지 않을 그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