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사라진 달집태우기
음력으로 새해 첫 달을 정월(正月)이라고 한다. 한 해를 여는 첫 번째 달인 만큼 바르게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1년 중 맨 처음 맞이하는 보름을 정월대보름으로 부르며 설과 추석에 버금가는 큰 명절로 여겼다. 유난히 크고 밝은 보름달을 쳐다보면서 한 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했다. 올 정월대보름은 2월 15일이다.
지난 1일 쇤 설날은 개인과 가족 중심의 명절이다. 사람마다 오랜만에 집과 고향을 찾아 가족, 친척과 오순도순 지낸다. 반면 정월대보름은 집단적이며 개방적이다. 예부터 이날 온 동네 사람이 모여 액운과 질병을 내쫓고 풍년이 들게 해 달라고 비는 제사를 지냈던 게다. 이웃과 음식을 나눠 먹고 다양한 단체 놀이도 즐겼다. 달집태우기가 대표적이다. 전국에서 생솔가지나 짚, 나뭇더미를 쌓아 올려 달집을 만들어 둥근 달이 뜰 때 태우는 풍속이 유행했다. 사람들은 달집 주위에 둘러서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행복과 소원을 빌거나 액과 재앙을 없애기 위한 종이를 넣어 태웠다.
부산에서는 매년 해운대해수욕장에 수만 명이 운집해 높이 25m가량 되는 대형 달집을 태우고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강강술래를 하는 ‘해운대 달맞이온천축제’가 최대 규모 행사로 꼽힌다. 광안리해수욕장에서 펼쳐지는 ‘수영구 달집태우기’, 낙동강변 삼락공원에서 열리는 ‘사상 전통달집놀이’도 외지인들이 찾을 정도로 유명하다.
하지만 올해 부산시와 각 구청은 이들 행사를 포함한 달집태우기를 모두 취소했다. 3년째 이어진 조치다.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대규모 군중이 몰리는 걸 막을 목적에서다.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일이지만, 공동체를 위한 세시풍속 하나가 우리 곁에서 사라져 아쉽다. 이에 앞서 정월대보름 풍속의 하나인 횃불싸움과 쥐불놀이가 세태 변화와 화재 위험으로 거의 자취를 감췄다.
부산 남구는 지난 12일 구청 광장에 지름 4m의 모형 달과 소원등을 설치해 오는 20일까지 매일 저녁 포토존을 운영하면서 달집태우기를 볼 수 없는 주민들의 서운함을 달래고 있다. 15일에 비록 달집을 태울 순 없으나 몸에 좋은 오곡밥과 나물 반찬을 먹고 호두, 잣, 밤 등으로 부럼을 깨물며 코로나19 퇴치 의지를 다질 일이다. 이 또한 정월대보름에 액을 물리치고 건강을 챙기려고 행해진 풍속인 것이다. 하루빨리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해 달집태우기가 가능한 안전한 일상을 되찾으면 좋겠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