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차기 대통령의 ‘공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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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은 공모 칼럼니스트

1년여 전, 마이클 샌델의 저서 은 능력주의로 점철된 대한민국 사회에 묵직한 한 방을 날렸다.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수많은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능력주의 사회의 폐해를 공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새로운 공정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강한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잘난 사람만 잘난 세상,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날 수 없는 세상. 이런 세상은 모두 ‘절차적 공정’에 입각해 만들어졌다. 절차적 공정은 어떤 배경을 가졌든 모두가 같은 시작점에 서서 출발해야 하고, 그래야 결과도 공정하다는 개념이다. 한 치 오차도 없이 모든 국민이 동일한 출발선에 서 있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완벽하게 공정한 절차’는 불가능하다. 평범한 학생은 일부 특권층 자녀처럼 대학 입시를 위해 인턴 활동을 하거나 교수 논문에 이름을 올릴 수 없고, 내 집 마련을 위해 돈을 모으는 서민은 상위 10%가 대한민국 부동산 총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현실을 뒤집을 수 없다.

갈수록 커지는 사회적 불평등
그 간극 메꾸는 것이 정치의 본질

대선 후보들 각종 공약 내세우지만
여전히 ‘절차적 공정’ 못 벗어나

불공정 시스템 자체를 뒤집어엎을
신념과 정책을 가진 대통령 소망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각기 다른 출발선이 필요하다는 ‘결과적 평등’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대학에서 지역 출신 학생을 미리 할당해서 뽑거나 기업 채용에서 성별의 비율을 맞추는 움직임이 그 예시다. 이것을 ‘역차별’이라 말하는 이들은 인종, 성별, 부모의 사회적 지위, 경제적 여건 등이 한 개인에게 거저 주어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대부분 자신이 가진 특권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기득권층이다. 애석하게도 이런 공정 담론이 역차별 논란에 휩싸이는 사이에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 격차는 더 벌어졌고 사회의 각종 고위직은 중산층, SKY 출신, 고학력자들의 밭이 되었다.

이 간극을 메꾸라고 있는 게 정치다. 본디 정치는 보편적인 사람들이 더 많은 공동 이익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사회의 안전망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일부 특권층의 배를 불리는 정치가 다반사다. 현실 정치의 모순은 차치하더라도, 정치의 이상향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공정이 회복되는 사회를 기대하는 사람은, 정치가 결과적 평등을 추구해 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선거가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당선이 유력한 양당 후보들은 나름대로 ‘공정’에 입각한 각종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절차적 공정을 벗어나지 못한 인식도 보인다.

먼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제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 발언했다. 불과 몇 주 전 ‘공정한 노동환경’을 위해 성별근로공시제와 양성평등 고용기구를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던 것을 보면, 윤 후보는 자신의 공약이 왜 나왔는지조차도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모양새다. 윤 후보는 뒤이어 성차별은 있다는 식으로 말을 바꾸었다. 대통령 후보의 잦은 말실수를 보는 유권자로서는 과연 윤 후보가 자신의 발언처럼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들 만한 재목인지 신뢰가 가지 않는 게 사실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성 평등, 교육의 기회, 취업 문제 등의 영역에서 다양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청년 공정 정책’ 일환으로 정시 확대 정책을 내세운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이 공약은 수시 비중이 과도한 학교 학과의 정시 비율을 늘리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후보는 최근 특권층의 입시 비리가 많았던 수시 비중을 줄이고 수능을 늘리면 공정한 교육에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부유한 계층이 모인 지역일수록 수능 고득점자가 많이 나오는 현실을 생각하면 단순히 수능 비중을 늘리는 것으로 교육 문제가 해결된다고 볼 수 없다. 극심한 대학 서열을 해결하는 정책, 낙오자 없는 평등한 교육을 만드는 정책이 먼저 필요할 것이다.

대선 주자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특히 공약은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리더가 어떤 사회적 문제를 가장 크게 인식하고 있는지,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하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단서다. 여기서 대통령 후보들이 인식하는 ‘공정’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노력한 만큼, 개인이 가진 능력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완벽한 사회’는 없다. 샌델의 공정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 내는 사람들을 좌절케 하려는 책은 아니었다. 다만 개인의 경제적 여건과 사회적 지위 등 ‘타고난 배경’을 무시한 채 모든 사람에게 “노력하라”고 말하는 시스템을 비판한 책이다. 이상하게도 그 시스템을 뒤집어엎겠다는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공정은 기회의 사다리를 고쳐주겠다는 구닥다리 정책이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을 허락하는 정책. 그런 신념과 비전을 가진 대통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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