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윤석열의 '적폐 수사' 발언이 문제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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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서울정치팀장

“쥴리 맞더라.”

지난 설 연휴 고향집에서 만난 누님이 불쑥 꺼낸 말이다. 그러자 음식 준비를 하던 어머니가 “또 쓸 데 없는 소리 한다”고 곧바로 타박을 놨고, 집안 사람들이 지켜보는 중에 두 사람의 옥신각신이 한동안 이어졌다. 평생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코로나로 집 밖 출입이 뜸해진 두 사람은 최근 정치 유튜브에 빠졌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의 ‘쥴리’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고 있는 친여 채널을 즐겨 보는 누님과 정반대의 보수 채널을 즐겨 보는 두 사람은 정치적 이견 때문에 대화까지 줄었다. 두 채널을 번갈아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나의 중재안은 쥴리와 ‘대장동 설계자’를 확신하는 두 사람에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듯했다. 대선이 코앞인 이유도 있겠지만, 이 정부 들어 일상화된 사회적 내전이 내 집안까지 틈입한 것 같아 돌아오는 발길이 무거웠다.

대선 앞두고 깊어진 진영 정치 그림자
기름 부은 윤 후보의 ‘적폐 수사’ 발언
차기 정부 성패 가를 첫 과제는 통합
‘내 편 정치’ 거부할 지도자의 결단 필요

‘역대급 비호감’ 소리를 듣는 ‘양강’ 후보지만,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표심은 두 사람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양상이다. ‘찍을 사람이 없다’는 유권자들의 고심은 결정의 순간 앞에 비자발적으로나마 해소되고 있지만, 어느 쪽으로든 ‘대선 이후’에 대한 걱정은 잦아들지 않는다. 여권의 재집권은 야당의 견제도 여론의 반대도 아랑곳 않는 독주와 ‘내로남불’에 날개를 달아줄까 두렵고, 제1야당의 ‘초보 운전자’는 거대 여당의 벽 앞에서 잃어버린 집권 초반을 맞게 될까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극단의 진영 대립 속에서 주렁주렁 달린 의혹도 제대로 털어내지 못한 두 사람 중 어느 한 쪽이 집권하면 과연 결과에 승복하는 선거의 근간은 지켜질까? 오히려 지난 5년 동안 가속화된 우리 내부의 ‘분단’이 고착화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가장 크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후보의 ‘집권 시 적폐 수사’ 발언은 부적절했다. “노골적인 정치 보복 선언”이라는 여권의 주장에 공감해서가 아니다. “옥상에 숨어 유인물을 뿌려야 되는 공안 정치의 나라로 되돌아가고 싶으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공포 마케팅’엔 더더욱 동의하지 않는다. 문제는 윤 후보가 집권 이후 쥐게 될 무소불위 권력의 무게에 대해 고민이 얕아 보인다는 점이다. 전 정권이든, 현 정권이든 위법한 권력 행사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당위론적 명제를 부정할 순 없다.

50%가 넘는 정권심판 여론, 특수부 검사 출신인 초보 정치인 윤석열을 제1야당 대선후보로 끌어올린 배경에는 현 정부에서 지지부진했던 울산시장 선거개입,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등 권력형 비리 의혹을 엄정하게 수사하리라는 야권 지지층의 기대감이 상당 부분 녹아있을 것이다. 정권 교체 이후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이 정부 핵심들의 ‘감옥행’을 당연한 수순처럼 얘기하는 강성 지지층에게 윤 후보의 발언이 내심 반가웠을 터다.

그러나 윤 후보는 그런 권력 행사가 불러올 파괴적 결과에 대해서는 숙고하지 않은 듯하다. 이는 윤 후보가 내내 비판해온 ‘내 편 만을 위한 정치’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집권하면 수사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천명해도 마찬가지다. 야당 정권 초기 지지층의 ‘보복’ 상황에서 검찰이 과연 전 정부 관련 수사에 균형감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게 안 된다는 건 누구보다 윤 후보가 잘 알 것이다.

야당을 궤멸 수준으로 몰고 간 현 정부의 적폐 수사가 재연되는 장면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 이후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갈까. 지지층은 묵은 체증이 풀렸다고 박수를 칠지 몰라도 적대와 배제의 언어가 통합의 공간을 집어삼킬 것이다. 5년 뒤 앙갚음을 다짐하는 악순환의 고리는 더욱 강고해질 게 뻔하다.

국민 50%가 적대하는 정권이 지금 내놓는 숱한 과제들을 실행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다음 정권의 최우선 과제는 적의만 남은 진영 간에 작은 통합의 다리라도 만드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깊어진 증오의 시대에서 통합은 이전보다 훨씬 어려운 숙제가 됐다. 통합이야말로 ‘지지층 정치’를 탈피하려는 지도자의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일견 모순돼 보이는 통합과 법치라는 두 과제를 어떻게 조화롭게 구현하느냐를 기술하는 건 기자의 역량 밖이다. 다만 새로운 통치의 전범을 만든다는 비상한 각오 없이는 이룰 수 없는 목표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는 윤 후보의 발언 이후 연일 ‘통합 대통령’을 외치는 이재명 후보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렇지 않은 통합 외침은 진정성 없는 선거용 구두선일 뿐이다.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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