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민의 기후 인사이트] 텀블러 사용이 위기의 지구를 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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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기후위기에 관한 강연을 마치고 나면 꼭 받는 질문이 있다.

“인류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건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심각한 위기 속에서 우리 개인은 무얼 해야 하는지요? 분리수거나 텀블러 사용 같은 게 실제로 기후위기 해결에 도움이 될까요?”

참으로 난감한 질문이다. 개인의 텀블러 사용이 탄소 감축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텀블러 사용으로 개인이 줄일 수 있는 탄소의 양은 1인당 1년에 약 10kg이다. 우리나라 인구수 5000만을 곱하면 50만 톤 정도다. 이는 우리나라 연간 탄소 배출량이 약 7억 톤 정도인 걸 감안할 때 고작 0.1%에도 못 미치는 미미한 양이다. 분리수거, 에코백, 전기 아껴 쓰기 등을 통해 개인이 절감할 수 있는 탄소 배출량은 200kg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쥐어 짜내듯 줄이더라도 우리나라 연간 배출량의 고작 2% 정도만 줄일 수 있을 뿐이다. “2%라도 어디냐,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여야지”라고 하면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나 조금 더 효과적인 탄소 감축 방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개인이 줄일 수 있는 탄소 배출량 미미
대기업들이 우리나라 전체 60% 차지
디지털 데이터로 발생 현황 드러내야

도대체 나머지 그 많은 탄소는 누가 어디에서 쓰고 있는 것일까. 가장 눈에 확 들어오는 건 대기업들의 탄소 배출량이다. 우리나라 20대 대기업들이 산업 분야에서 배출하는 탄소의 양은 우리나라 전체 배출량의 무려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개인이 살아갈 때 꼭 필요한 냉·난방, 교통, 식량 생산과 유통 등에 이용되는 탄소 배출량이 약 20~30%를 차지한다는 걸 감안하면 대단한 수치이고, 사실상 아무리 개인이 노력해 봐야 국가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구조임을 금세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기후위기 심각성을 외치는 강연에서 참으로 야박하게 “텀블러요? 그거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강연을 거듭할수록 꼭 나오는 이 동일한 질문에 어떻게 답변을 할까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조금씩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는데, 핵심은 ‘탄소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단순한 사실이었다.

탄소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내가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했을 때 얼마만큼의 탄소 배출이 줄어들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저 줄어들었겠거니 하는 것이다. 텀블러 사용으로 탄소 배출을 아주 조금이라도 줄였다고 치자. 누가 알아 주기나 할까. 스스로 지구를 위해 조금이나마 무언가를 해냈다는 스스로의 자긍심에 그냥 만족할 것인가. 그것으로 족하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자기만족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탄소를 지금까지 누가 얼마나 많이 썼는지, 현재 누가 가장 많이 쓰고 있는지 선명하게 눈에 보인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탄소 배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아차리게 될 것이고, 실제로 이들이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일 때 진정한 기후위기 문제의 해결이 시작될 것이다.

나는 개인의 실천으로 탄소 배출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근거 없이 말하는 것에 반대한다. 우리가 지금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무작정 탄소를 줄이자는 식의 맹목적인 캠페인이다. 이런 캠페인은 의도했든 아니든 책임 있는 탄소 배출 주체의 책임을 은근슬쩍 희석시키는 간접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캠페인보다는 차라리 ‘내가 한 해 동안 쓰는 탄소의 양이 얼마인지 계산해 봅시다’ 같은 캠페인이 훨씬 유용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탄소의 양을 계산해 낼 때에는 디지털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인공위성을 활용하여 수집된 여러 공간 정보들은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을 통해 배출량 빅데이터로 바뀔 수 있고, 또 제품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탄소의 흔적들은 블록체인 기술과 다양한 사물 인터넷의 결합을 통해 배출량 데이터로 가공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을 통해 우리의 삶 곳곳에서 탄소가 눈에 띄는 디지털 데이터로 가공되어 인터넷, TV, 거리의 전광판 등에서 그 실체가 선명하게 드러날 때 비로소 현실성 있는 탄소 감축 로드맵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개인이 기후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은 조건부로 ‘예스’다. 지금처럼 탄소 배출량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다. 개인이 노력해서 줄어든 탄소가 티가 나면 날수록 개인은 더욱더 탄소를 줄이려고 노력할 수 있을 것이고, 또 기업들이 생산하는 물건들이 얼마만큼의 탄소 배출을 유발하는지 명확해지면 질수록 미래를 위한 현명한 선택과 소비가 가능해질 것이다. 기후위기 극복에 4차 산업혁명의 기반 기술들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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