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라는 하나의 고속도, 10개로 늘려 병목 현상 해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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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영 교수 출간 ‘서울대 10개 만들기’

‘왜 한국만 교육지옥일까?’ 이 질문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끝에 최근 해답을 내놓은 학자가 있다. 경희대 사회학과 김종영 교수가 출간한 는 도발적인 제목만큼이나 명쾌한 교육개혁 방안으로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부산에서 토론회가 열린 데 이어 이달 초 거점국립대 총장협의회에서도 호응이 쏟아졌다. 책 속에 담긴 ‘서울대 10개 만들기’ 방안의 핵심을 살펴보자.

전국 거점국립대 9곳 서울대처럼
하향평준화 아닌 상향평준화 추구
정부 지원금을 서울대 수준으로
미 캘리포니아대학 UC 벤치마킹

■하향평준화 아닌 상향평준화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부산대를 비롯한 전국의 거점국립대 9곳을 서울대처럼 만들자는 주장이다. 이는 10여 년 전부터 제안된 대학통합네트워크 방안의 하나인 서울대와 거점국립대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하는 방식과 흡사하다. 대학 이름은 서울대(혹은 한국대)로 통일하고, 졸업장도 같은 이름으로 수여된다.

국립대 10개를 하나로 묶으면 서울대 폐지 혹은 하향평준화를 우려할 수 있지만, 김 교수의 ‘서울대 10개’는 다르다. 서울대는 그대로 둔 채 나머지 대학을 서울대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격상시키는 ‘상향평준화’ 방식이기 때문이다.

전국의 거점국립대는 강원대·경북대·경상국립대·부산대·전남대·전북대·제주대·충남대·충북대 등 9곳. 지역대학의 위상이 갈수록 추락하는 상황에서 이들 대학을 어떻게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김 교수의 방안은 간명하다. 정부 지원금을 서울대만큼 늘리자는 것이다.

2020년 기준 서울대의 한 해 예산은 1조 5000억 원. 거점국립대 중 최고인 부산대(7800억 원)조차 서울대의 절반에 불과하다. 9개 거점국립대의 정부지원금은 평균 1265억 원으로 서울대(4866억 원)와 3600억 원이나 차이가 난다. 이들 대학에 매년 3600억 원씩(총 3~4조 원)을 더 투자해 우수한 교수·연구진을 영입하고, 이들을 통해 산학협력단 연구비까지 확충하면 적어도 연고대 수준(연 1조 원대 예산)의 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가령 지리적으로 가까운 충남대와 충북대의 학과와 단과대를 통합해 대학별로 특성화하면, 미국 명문대 수준으로 교수·연구진의 양과 질을 갖출 수 있다는 구상이다.



■지역대를 서울대로? UC를 보라

김 교수의 ‘서울대 10개’는 196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체제의 성공을 모델로 한다. 캘리포니아는 4년제 연구중심대학(UC) 10개교, 4년제 교육중심대학(CSU) 23개교, 2년제 직업중심대학(CCC) 116개교 등 3중 공립대학체제로 이뤄졌는데, 이 중 UC 시스템을 벤치마킹하자는 것. 2021년 기준으로 UC 10개 대학 중 무려 7개가 세계대학순위(ARWU) 100위권 내에 위치해, 서울대를 멀찌감치 앞선다.

UC 10개 대학과 서울대를 포함한 거점국립대 10개를 비교하면 격차는 더욱 확연하다. 학생 수는 비슷한데 예산은 UC가 8.6배, 교원 수는 2배 많고, 이 같은 차이는 노벨상 수상자 64명 대 0명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예산만 대폭 늘린다고 지역대학이 서울대가 될 수 있을까. 김 교수는 한때 캘리포니아의 무명 대학에 불과했던 칼텍과 스탠퍼드 사례를 든다. 1891년 LA 인근 소도시 패서디나에 설립된 직업전문대학인 스루프공과대학은 MIT를 모델로 대대적인 투자를 하면서 1920년 이름을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으로 바꿨다. 이후 세계적인 인재들을 영입하며 10년 만에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한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하위권에 머물던 스탠퍼드 대학 역시 정부와 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25년 만에 하버드·MIT와 견줄 정도로 성장하며 ‘실리콘 밸리’ 탄생을 이끌었다.

국내에서도 카이스트(대전), 포스텍(포항), 울산과기원(울산)처럼 집중 투자로 인재를 끌어모으면 지역대학도 충분히 발전 가능하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교육지옥 닫고, 4차 산업혁명 열자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한국에만 있는 입시지옥을 끝낼 방안으로도 주목된다. 김 교수는 그동안 문제의 원인인 대학체제를 그대로 둔 채 결과인 입시체제만 바꾸려 했기 때문에 교육개혁에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서울대 수준의 대학 10개를 만들어 ‘서울대 졸업장’을 양적 완화하면 사교육과 학벌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학문의 가치는 올라간다는 생각이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한국사회를 대학병목(SKY집중), 공간병목(서울집중), 시험병목(상대평가 줄세우기), 계급병목(사교육), 직업병목(정규직) 등 5가지 병목(독점)사회로 규정한다. 모두가 서울대로 향하는 단 하나의 고속도로를 달리느라 꽉 막힌 현 상황에서, 고속도로를 10개로 늘리면(서울대 10개를 만들면) 대학병목과 공간병목을 해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앞서 지난달 27일 부산대 통일한국연구원이 마련한 토론회에서 김 교수는 대학혁신을 넘어 국가균형발전 방안으로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강조했다. 그는 “세계적인 대학 없이는 세계적인 도시가 될 수 없다”며 “처음엔 지방대에 불과했던 캘리포니아 대학들이 실리콘 밸리와 함께 3차 산업혁명의 중심지로 도약했듯, 우리나라도 국가전략 차원에서 서울대 10개를 만들어 4차 산업혁명 중심지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9일 거점국립대 9명의 총장들은 손을 맞잡고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대선 공약으로 제안하고 나섰다. 전국적인 호응 속에 교육개혁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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