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위선자들
김형 경제부 금융팀장
3년 전이었다. 당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임기를 절반 이상 남겨둔 시점에서 긴급 사퇴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소식에 부산이 흔들렸다.
현직 부산시장이 사퇴했다는 충격이 가시지 않은 시점에서 더 큰 충격이 몰려왔다. 오 전 시장이 쫓기듯 자리를 물러난 이유가 ‘강제추행’이라는 소식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오 전 시장의 ‘강제추행설’이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당시 기자가 속해 있던 편집국 사회부는 ‘진실’을 찾기 위해 취재에 돌입했다.
그러나 진실을 둘러싼 벽은 단단했다. 당시 ‘강제추행설’의 장본인인 오 전 시장은 사퇴 기자회견을 한 직후 숨어버렸다. 부산시 정책수석보좌관, 대외협력보좌관 등 오 전 시장의 최측근들도 그날 이후 출근을 하지 않고 연락을 두절한 채 잠적했다.
오 전 시장이 잠적한 지 2주 정도 지난 시점에 는 거제도의 한 펜션에서 오 전 시장을 찾아냈다. 그의 ‘성추행’에 부산시가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 정작 당사자는 청바지 등 편한 옷차림에 책을 읽으며 유유자적하며 지내는 모습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더 큰 문제는 한때 대한민국 제2도시의 수장이었던 사람의 비양심적이고 이기적인 태도였다.
오 전 시장은 와 맞닥뜨린 자리에서 그 진실에 대해 일체 함구했다. 오히려 ‘사람을 잘못 봤다’며 도망치듯 현장을 떠났다. 이후 진행된 경찰 조사와 법정 재판에서도 오 전 시장과 그의 측근들은 진실을 감추며 오 전 시장의 형량을 줄이는 데에만 집중했다.
특히 오 전 시장 측은 2심을 앞두고 피해자의 진료기록에 대해 재 감정을 의뢰하는 뻔뻔함까지 보였다. 당시 피해자는 그 사건에 대한 충격으로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렇게 진실은 드러나지 않은 채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결국 진실의 민낯은 이달 9일 법정에서 드러났다.
그동안 불필요한 신체 접촉 등 가벼운 혐의만 주장하던 오 전 시장은 결국 ‘강제추행치상’ 혐의를 인정했다. 강제추행치상죄는 외상후스트레스성장애’가 인정될 경우 적용되는 중범죄이다.
그동안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한 채 자신의 영달만 지키려고 했던 사람이 한때 부산시장이었다는 사실에 시민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보다 오 전 시장이 속한 더불어민주당의 태도는 무책임했고 위선적이었다.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민주당의 뿌리는 양심과 도덕에 있다. 과거 군부·독재 정권에 대항해 온갖 고초를 당하면서도 양심을 지키고 도덕을 강조하던 사람들이 만든 정당이다.
누구보다 양심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할 사람들이 정작 오 전 시장의 사건처럼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진실을 은폐하는 데에만 열중했다.
오히려 이 정권이 양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당시 진실을 얘기하고 피해자와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이 더 바람직했다. 차라리 그럴 용기가 없으면 양심적인 척 도덕적인 척 하지 말 길 바란다. 토마스 홉스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요, 의무’라고 했다. 이 정부에게는 힘 있고 돈 있는 오 전 시장만 국민이고, 힘 없고 고통 받은 피해자는 국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