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깜깜이 지방선거’ 해도 해도 너무 한다
6·1 전국동시지방선거가 100일도 채 남지 않았지만 무엇 하나 뚜렷이 정해진 게 없다. 정국이 온통 대선 이슈에만 함몰돼 지방선거는 뒷전으로 밀려난 탓이다. 여당은 정권 재창출, 야당은 정권 교체에 사활을 걸면서 법이 정한 예비후보들의 후보자 등록과 선거운동까지 제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지역에서는 광역자치단체장 후보군만 약간 거론될 뿐, 기초자치단체장은 물론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광역·기초의원 후보군은 예비 출마자가 누군지조차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로 인해 역대급 ‘깜깜이 선거’가 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지방선거를 홀대하는 중앙 정치권에 대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국힘 사실상 대선 전 선거운동 금지
법정 시한 지나도 선거구 획정조차 못 해
실상 이번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은 이미 지난 18일 시작됐다. 하지만 21일 현재까지 부산은 물론 전국에서도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이는 극히 드물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출마 예정자들에게 대선 이후로 등록을 미루라는 지침을 내렸고, 제1 야당 국민의힘도 대선 전 등록은 가능하지만 출마 선언과 개인 선거운동은 대선 이후에 하라는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두 거대 정당이 “대선에서 지면 지방선거도 없다”며 사실상 대선 전 선거운동 금지령을 내린 셈이다. 출마 예정자, 특히 정치 신인들은 현재 분위기에서 지방선거를 언급했다가 당의 눈밖에 나 공천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싶어 스스로 움츠러들 수밖에 없게 됐다.
더 한심한 건 이번 지방선거에 적용할 선거구조차 아직까지 획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선거법상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 시한은 선거일 180일 전, 즉 지난해 12월 1일이었는데 국회가 지금껏 법을 무시하며 방치해 두고 있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우선 급한 대선부터 치르고, 복잡한 셈법이 필요한 선거구는 정파별 유불리를 따져 나중에 처리하겠다는 여야의 속내가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결과 출마 예정자들은 자신의 선거구를 모르고 지역 유권자는 선택해야 할 후보를 알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됐다. 명백한 국회의 직무유기로, 정치적 이익이 법과 유권자에 대한 책무보다 중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굳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지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지방선거는 대선 못지않게 중요하다. 하지만 대선에 함몰된 지금 상태로는 출마 예정자들은 선거를 어떻게 치러야 할지 막막하고 유권자들은 정책과 인물을 검증할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하게 된다. 지역의 젊은 정치 신인이 지방선거로 데뷔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말로는 젊은 정치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그들의 정치 참여를 막는 이율배반의 행태를 보이는 여야를 질타하지 않을 수 없다. ‘깜깜이 선거’의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를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