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아파트 전기차 충전 구역, 불법주정차 단속 난감하네”
충전 구역 방해행위 단속 강화
전기차를 모는 이 모(48·부산 연제구) 씨는 지난 20일 오후 차량 충전을 위해 아파트 주차장 내 충전구역으로 향했지만 운전대를 돌려야 했다. 충전 공간이 ‘만석’이었던 것이다. 완속 충전기의 법적 충전시간을 훌쩍 넘겨 ‘19시간 55분’째 자리를 차지한 전기차는 물론, 휘발유 차량이 버젓이 충전 공간에 주차한 경우도 있었다.
급속·완속 따라 시간 제한 달라
시간 맞춰 차 빼기 어려워 ‘갈등’
단속 공무원도 충전소 감시 한계
충전 완료 알려주는 시스템 필요
지자체, 현장은 많고 인력은 부족
주민 “상황 방치한다” 불만 쏟아져
이 씨는 “신고를 해도 바로 단속이 되지도 않는다”며 “충전구역은 주유 장소이지 주차면이 아닌데, 충전을 못해 전기차를 타지 못하는 상황은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토로했다.
전기차 관련 법령 개정으로 이달부터 충전구역 불법 주정차 단속이 본격화했지만 현장에서는 준수도, 단속도 쉽지 않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전기차 차주는 법적 충전시간에 맞춰 차량을 빼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단속 공무원도 모든 충전소를 감시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전기차 이용 확대에 앞서 충전 방해행위를 관리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부산시 등에 따르면 지난달 28일부터 친환경자동차법 시행령에 따라 전기차 충전구역에 대한 방해행위 단속이 강화됐다. 내연기관 차량이 충전구역에 주차하거나 전기차가 충전이 끝났는데도 충전구역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최대 2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충전이 끝난 전기차는 완속 충전기의 경우 14시간, 급속 충전기에선 1시간 내에 충전구역을 벗어나야 한다.
법령 개정 이후 충전구역을 둘러싼 주민 갈등은 부쩍 늘었다. 충전구역의 차량을 빼 달라고 요청하다 여기저기서 실랑이가 벌어지는 것이다. 전기차 차주 이 씨는 “충전시간을 넘겨 주차된 차량이 있어 차주에게 직접 연락을 했다가 갈등이 생겨 포기하고 바로 구청에 민원을 넣었다”며 “구청에서도 바로 단속을 나오지 않아, 충전을 못해 전기차를 타지 못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전기차 충전 문제를 놓고 원성이 자자하다.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전기차 구매를 독려해서 구매했는데, 막상 사고 나니 충전이 스트레스”라며 “전기차가 늘어나면서 충전 공간이 부족해졌고, 충전구역에 주차된 다른 전기차에 민감하게 대응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용자는 “초과시간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인 정해진 14시간·1시간에 맞춰 차를 빼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충전이 끝나면 알람이 울리거나 모바일앱 등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속 업무를 맡은 지차체도 애를 먹고 있다. 법령 개정으로 단속 권한이 시청에서 일선 구·군청으로 넘어오면서 민원은 쏟아지지만, 인력난으로 모든 현장을 단속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법 시행 이후 일주일 동안 부산 강서구에 들어온 관련 민원만 80여 건에 달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담당자는 1명인데 관리해야 할 충전기는 300여 대”라며 “계속 옆에서 법적 충전시간 준수 여부를 감시할 수도 없는데, 주민들은 상황을 방치한다며 불만이 쏟아져 난감하다”고 말했다.
현장 불만이 쏟아지자 산업통상부는 법령 시행 이후 추가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당초 충전 방해행위에 대해 ‘현장 단속’만 인정하기로 했다가, 사진·동영상을 통한 온라인 신고도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전기차 충전을 둘러싼 현장 혼란에 대해 부산시도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부산시 기후대기과 관계자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이미 단속 권한이 지자체로 넘어가 시에서 관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