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탐정 코남] #14. 부산 특이한 지하철역 '또' 가봤습니다
부산의 모든 궁금증을 직접 확인하는 '맹탐정 코남'입니다. 황당하고 재미있는 '사건·사고·장소·사람'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한 발짝 물러서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여러 가지. 유튜브 구독자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사건 개요>
[맹탐정 코남]을 시작한 지 3개월, 12번째 에피소드인 '부산의 기묘한 지하철역(https://www.youtube.com/watch?v=pU4yk-PKD-k)'이 유튜브 조회 수 4만3000회를 기록했다. 콘텐츠 평균 조회 수는 약 2000회. 이 정도면 '중박'정도의 성적이다. 한껏 기대한 콘텐츠는 조회 수가 처참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지다니… 그렇다고 '알 수 없는 유튜브 세상'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한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다. 조회 수가 높은 이유는 분명하다.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콘텐츠보다 크다는 점. 물 들어올 시기도 많이 지났고, 노 저을 타이밍도 아니지만 그래도 인공호흡기 한 번 달아보자. 입 벌려주세요. '부산 기묘한 지하철역 두 번째 에피소드' 들어갑니다.
<현장 검증>
계단을 파고 들어간 지하철 입구
부산 도시철도에는 갸야역 외에도 던전(몬스터 소굴) 입구 같은 출입구를 가진 역이 또 있다. 앞 맹탐정 에피소드에서 가야역을 소개했을 때, 사람들의 댓글 중 가장 많이 달린 내용은, "왜 OO역은 빠졌나요?" "OO역이 더 던전 입구 같은데… " 라는 글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2호선 감전역이다.
감전역의 모든 출입구가 특이하게 생기지는 않았다. 특이한 역은 '4번 출입구' 단 한 곳. 감전역에서 내려 4번 출입구로 걸었다. 감전역에는 총 4개의 출입구가 있다. 그런데 맞은편의 2번 출입구나 1번, 3번 출입구와 달리 대합실을 벗어나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까지 통로가 꽤 길다. 출입구를 억지로 잡아 뺀 듯 지상으로 바로 올라가지 않고 한참을 걸어가야 지상으로 통하도록 설계됐다.
던전 입구? 보스급은 아닌데…
지상으로 올라왔다. 구조는 정말 특이했다. 여러 사람이 댓글에서 가보라고 추천할 만하다. 옹벽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도시철도 출입구 옆, 아니 출입구와 바로 연결되어 있다. 왕복 4차로 도로라고 치면 차선 두 개는 지하로, 나머지 두 개는 언덕 위로 향하는 셈이다. 출입구 옆 계단은 성인 남성 2명이 나란히 서기도 좁은 계단이다. 도시철도 출입구 범위만큼 올라가면 다시 계단의 폭이 넓어진다.
게임 속 던전도 난이도에 따라 풍경이나 분위기가 달라진다. 클리어하기 어려울수록 복잡하고 규모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감전역의 출입구는 특이하긴 하나 보스가 살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초보를 갓 벗어난 플레이어가 도전하기 좋은 느낌이다.
4번 출입구를 통해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땅굴 속에 살다가 고개만 쏙 내밀고 동태를 살핀 후 지상으로 나오는 미어캣을 보는 느낌이다.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계단과 도시철도 출입구가 맞닿아 있는 부분을 주의 깊게 살폈다. 처음부터 한 몸(?)으로 설계되어 만들어졌다는 느낌은 없다. 시멘트 색·재질이 서로 달랐다. 억지로 두 계단을 붙여놓았다. 맹탕정 일행이 지상으로 올라오기 위해 걸었던, 유난히 길었던 통로 구간. 그 지상에는 옹벽 위 주민들을 위한 지정 주차장이 들어서 있다.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출입구를 멀리 놓은 걸까? 그렇다고 계단을 파서 만들건 무슨 이유인가? 궁금해졌다. 둘 중 뭐가 먼저 생겼을까?
출입구 바로 옆 가게 사장님은 "오래되어서 뭐가 먼저 생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맹탐정은 추리에 한계를 느끼고, 부산 도시철도공사에 문의 할 수 밖에 없었다. 곧 정답을 구했다. 90년대 초, 감전역 4번 출입구와 2번 출입구 사이로 학감대로와 백양대로를 잇는 도로 연결 공사가 계획에 있었다. 이 도로 계획에 감전역이 포함되어 출입구가 미설치 됐다. 그러나 이 계획이 무산되면서, 다시 출입구를 만들어야 했는데, 경사 높은 언덕으로 이루어진 주변지역 여건상 부득이하게 통로가 긴 출입구 형태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냉정해지는 냉정역?
다음은 냉정역이다. 이곳은 도시철도 역 구조가 특이하거나, 출입구가 던전입구처럼 생겨서 찾아온게 아니다. 바로 이름 때문에 왔다.
부산 도시철도에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역들이 많다. 낫개? 낫이랑 관련이 있을까? 미남? 잘생긴 남자들이 많은가?, 대티? 정말 모르겠다. 동매? 미스터선샤인 구동매가 생각나긴 하는데…, 토성? 태양계의 그 토성? 도대체 어원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이름을 가진 역들이 많다.
다시 냉정역. 이곳 주민들은 차가운 도시 속 더 냉정한 사람들일까? 냉정의 정은 우리가 흔히 아는 한자다. 바로 '우물 정(井)' 자다. 냉은 찰 냉(冷), 해석하자면 말 그대로 차가운 우물이다.
지하철역을 왜 우물 이름으로 지었을까?
냉정역 근처 실제로 우물이 있기 때문이다. 냉정역 5번 출구를 나와 경남정보대 쪽으로 50m 정도 오르막을 올라가면 냉정 우물을 만날 수 있다. 높은 건물들 사이 냉정우물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겨울이지만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우물이라기보다 작은 샘에 가깝다. 그래서 도로 앞 성인 남자 키 만한 비석에 새겨진 이름도 '냉정샘'이다. 몇 번의 리모델링을 거쳤는지 깔끔하고 잘 정비되어 있다.
냉정샘에서 흐른 물이 아래 빨래터로 이어지고 있다. 냉정샘의 과거 모습이 담긴 사진도 볼 수 있다. 냉정의 유래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소개된 글이다. '조선에서 물이 청정하고 감미로운 곳이 3~4개소가 있는데 냉정의 물맛은 천하일품이다'.
지금은 동네 주민들 OOO로 사용된다
냉정은 가야에서 주례로 넘어오는 엄광산 고개 아래 자리한 자연 샘이다. 옛날부터 냉정고개를 왕래하는 행인들의 갈증을 해결하는 곳이었고, 특히 부산장, 동래장, 하단장을 이용하는 상인들에겐 물 좋은 샘터로 알려졌다고 한다. '천하일품 물맛'이라는 말에 마셔보려고 했으나, 때마침 경고문이 눈에 들어왔다. 도시개발로 인해 지하수가 오염돼 식수로는 이용이 불가능하다. 아쉽게 돌아섰다. 하긴 도심 속 우물이 식수로 마실 수 있는 곳이 남아있을지 의문이다. 냉정샘 역시 지금은 주민들의 쉼터로, 빨래터로 이용되고 있다.
냉정역 역무원도 "촬영 당일 아침 냉정 우물을 들렀는데, 마침 주민분 한 명이 이불 빨래를 하고 계셨다"며 "미처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웠는데, 아직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여름엔 더위 쉼터로, 사계절 빨래터로 이용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고 말했다. 이 동네 코인세탁방은 냉정샘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
배산역도 제법 깊다고?
2022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지하철역은 만덕역이다. 잠깐 복습해보자면 깊이는 64.25m. 아파트 23층 높이만큼 깊다. 개찰구를 통과해 승강장까지 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무려 지하 9층까지 내려가야 한다. 전국 1등이다. 배산역은 만덕역에 조금 못 미친다, 심도 55.2m. 깊긴 하지만 우리는 이미 만덕역을 다녀와 감흥이 적다.
엘리베이터도 지하 8층까지다. 한 층 모자란다. 그런데 왜 맹탐정은 배산역에 왔을까? 2등도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서? 사실 배산역은 전국에서 2번째로 깊지도 않다. 전국 3위다. 그러나 만덕역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바로 '천국의 계단'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에스컬레이터가 있기 때문이다.
천국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
맹탐정 일행이 배산역에 도착했다. 열차에서 내려 올라가는 길을 살피고 있는데 다른 승객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향했다. 모두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거다. 하지만 맹탐정의 목표는 엘리베이터가 아니다. 만덕역과 달리 배산역은 에스컬레이터를 운용하고 있다. 일반적인 크기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층 위로 올라갔다. 개찰구를 통과하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갈아탈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 가운데, 마치 기둥처럼 서 있는 배산역의 진짜 '주인공'을 만났다. 그건 에스컬레이터라 하기엔 너무나 컸다. 엄청나게 길고, 가팔랐고, 끝이 안 보였고, 그리고 웅장했다. 그야말로 '천국의 계단'이다.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발을 들여놓기가 망설여졌다, 모두가 넋을 놓았다.
에스컬레이터만 4분을 탄다
농담이 아니다. 길이가 긴 탓도 있지만 느렸다.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그렇다 보니 백화점이나 다른 곳에 비해 확실히 에스컬레이터가 천천히 움직였다. 맹탐정을 촬영하기 위해 밑에서 카메라를 잡고 있는 PD님이 개미처럼 보였다. 여기서는 쉽게 장난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굴러떨어지면 확실한 천국행이다.
서 있는 시간이 지루해질 무렵 에스컬레이터가 도착했다. 다 올라왔다고 생각했지만, 맹탐정이 틀렸다. 방금 탄 것과 같은 규모의 에스컬레이터가 한 대 더 있다. 지금 서 있는 곳은 층수로 따지면 지하 4층이다. 한 번 더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대합실로 올라갈 수 있다. 과거엔 너무 에스컬레이터가 길고 오래(?) 올라가는 탓에 노인 중 일부는 계단에 앉아 올라갔다는 믿지 못할 '썰'도 존재한다.
비상시엔 어디로 탈출해야 할까?
만덕역 승강장에서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지상으로 나가기보다 남산정으로 대피하는 게 좋다고 했다. 그럼 배산역에서는 어떨까? 배산역의 비상계단은 만덕역처럼 크지 않다. 폭은 아파트 비상계단보다 조금 더 큰 정도다. 그래서 사람들이 몰리면 사고가 나기도 쉽다. 엘리베이터도 위험하고, 엄청난 길이를 자랑하는 에스컬레이터는 더 위험하다. 역시 철로로 옆 통로를 따라 물만골이나 망미역으로 도망쳐야 한다. 어디로 가야 할까? 배산에서 망미역까지는 1.2km, 물만골역까지는 1.1km다. 조금이라도 가까운 물만골로 대피하자.
<사건 결말>
파고들수록,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부산 지하철역. 총 148개 중 6개 역의 이야기를 살펴봤다. 그렇다. 맹탐정에게는 아직 142개의 역이 남아있다. 대충 40편 정도는 더 우려먹을 수 있다. 사실 한편 더 준비 중이다. 냉정역처럼 특이한 이름을 가진 역의 유래에 대해 살펴볼 계획만 세우고 있다. 부산 지하철역 이름의 역사는 곧 부산의 역사다. 일상 속 무심코 지나치는 부산의 역사에 더 귀를 기울일 계획이다.
<사족>
역 이름도 사고, 팔 수 있다?
부산교통공사 역명심의위원회 운영 규정에 따르면 '역명'이란 열차가 정차하고 여객을 운송하기 위하여 설치한 도시철도역의 명칭을 말하는데, 무상으로 명명함을 원칙으로 한다. 바꿀 수 있는 건 '역명부기'. 역명부기는 본 역명의 아래 또는 우측에 괄호의 형태로 덧붙여 표기하는 명칭을 말한다.
공개 입찰을 통해 선정할 수 있는데 공익기관이나 학교, 백화점, 호텔, 1000세대 이상 아파트 등 인지도가 높고 도시철도 이용 시민이 자주 가는 시설이 해당한다. 그렇다.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회사가 소재하고 있는 '부산진역'을 '맹탐정역'으로 바꿀 수는 없다. 역명부기 유상판매 계약 기간은 3년 이내다. 도시철도 2호선 경성대·부경대역. 괄호 안에 동명대학교라고 표기되어 있다. 괄호 안에 학교 이름을 써넣는 비용은 2억 2000만 원이다.
서면역 14번 출입구
냉정역에서 배산역으로 가기 위해 서면역에서 환승하기로 했다. 지하철 에피소드를 다루면서 역 안내도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서면역 안내도를 보니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서면역 출입구는 총 14개인데, 이상하게 출구 번호는 15번까지 있다. 14번 출구가 결번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부신 도시철도의 특이한 출구번호 부여 방식 때문이다. 상행선에는 홀수만, 하행선에는 짝수만 올 수 있다. 도시철도 1호선을 기준으로 봤을 때 상행선인 다대포해수욕장 방면으로는 홀수 번호를 가진 출구가 위치하고, 반대쪽 노포역 방면 하행선에는 짝수 번호를 가진 출구만 자리 잡는다는 식이다. 때문에 도로 구조상 출구개수가 양쪽이 대칭을 이루지 못했을 경우, 번호를 건너뛰더라도 홀수 또는 짝수 번호만 매긴다는 식이다. 번호가 중간에 빠지더라도 말이다. 부산 도시철도의 '쿨'함에 놀랐다.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