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익의 참살이 인문학] 피로를 즐기는 법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피로는 삶의 기본 조건이다.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했는데도 피곤함을 못 느껴 휴식을 취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체력은 금방 고갈될 것이고 결국 생존과 번식의 기회도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후손을 남길 가능성은 무척 낮아질 것이고 세월이 흐르면 이렇게 휴식을 모르는 강인한 인간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래서 자연은 힘든 노동 뒤에는 휴식을 취하도록 하는 생리적 기제를 진화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피로다. 피로는 생리적 자원의 고갈을 알리는 경고인 동시에 휴식 후에는 다시 노동을 하도록 부추기는 계기여야 한다.
그래서 피로에는 성취감이라는 보상이 수반된다. 내가 이만큼 일했으니 앞으로 얼마간은 걱정 없이 쉴 수 있다는 안도와 만족도 따라온다. 생존을 위해 애쓴 데 대한 생리적·심리적 보상이다. 피로는 우리를 재충전으로 이끄는 진화의 발명품인 셈이다. 적어도 우리의 조상들이 적응하면서 진화해 온 시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석기시대에는 피로가 생존과 번식의 기본 조건이었고 보상체계였다. 그래서 피로는 야릇한 쾌감과 함께 찾아온다.
욕망 탓에 만성피로 시달리는 현대인
건강과 행복조차 성공의 지표로 여겨
적응과 극복 통해 새로운 ‘나’ 찾아야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인은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는 하루에 10km 이상 걸어야 겨우 생존에 필요한 먹이를 구할 수 있었던 석기시대에 적응한 보상체계를 가지고 매일 수십km를 다니면서도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영양을 섭취하는 21세기를 살아간다. 조상들은 가끔씩 피로했고 그 피로의 열매를 충분히 즐겼지만, 현대인은 항상 피곤하지만 그 보상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
현대인의 욕망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리적 목표 너머로 무한히 확장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 ‘나’ 또는 ‘자아’의 관념이 있다. 현대인은 욕망과 함께 비대해진 자아와 그 욕망과 자아를 만족시킬 수 없는 현실과의 불화 때문에 피곤하다. 현대인의 만성피로는 스스로를 착취하는 자아와 그런 자아를 양산한 사회 구조로 인한 것이다.
재산과 연봉과 지위와 스펙이 생존과 번식을 대신해 욕망과 충족의 양을 가늠하는 지표가 된 지 오래다. 우리를 진화시킨 생물학적 힘들은 생존과 번식을 향해 정렬되어 있었고 피로를 통해 그 힘을 지속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욕망은 대체로 권력과 자본의 이익을 향해 있지만, 우리들 자신이 그 주인이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자본과 권력을 대신한 나 자신의 욕망이 나를 착취하는 구조다.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생존은 당연한 권리이며 번식은 선택이므로 더 이상 삶을 지배하는 원리가 아니다. 그 자리를 건강과 행복이 차지했다. 생존과 번식은 생물학적 추동력인 반면 건강과 행복은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지향이다. 전자는 아무 조건이 없는 생명의 힘이지만, 후자는 객관적 조건에 더해 다양한 가치와 의미가 전제된 인간의 주관적 욕망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건강과 행복을 생존과 번식처럼 객관적 성공의 지표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자본의 논리에 순치된 우리의 무의식은 이렇게 묻는다. “건강 너 ‘얼마’면 되니?”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렇게 건강과 행복은 가치와 의미가 아닌 물질적 조건으로 환원된다. 우리는 이렇게 가치와 목적을 상실한 건강을 위해 자신의 창조적 자원을 고갈시키는 건강의 노예, 물질로 환원된 행복의 노예가 되어 간다.
모든 질병과 불행을 스트레스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생존과 번영에 기여해 온 스트레스의 긍정적 역할을 무시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이나 조건에 처할 때 느끼는 심리적, 신체적 긴장 상태’다. 그러한 긴장과 적응, 도전과 극복을 통한 심리적, 신체적 변화가 바로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진화의 원동력이다.
스트레스와 피로는 새로운 ‘나’로 가는 길을 알려 준다. 그것에 적응하고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삶의 지향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의 ‘몸’은 그 도전과 극복의 경험을 담는 그릇이다. 몸은 다양한 스트레스와 피로의 경험을 토대로 삶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실천의 방식을 만들어 낸다. 그 과정 속에서 나 그리고 나의 몸은 끊임없이 새로워진다. 나와 나의 몸은 ‘끊임없는 새로워짐’일뿐 어떤 물질이나 정신이 아니다. 나는 몸이고,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 가는 영원히 미완성인 예술 작품이다.
예술 작품의 창작에는 고통이 따른다. 나의 몸도 그것이 겪어 온 스트레스와 고통 그리고 그 이후에 맛보았을 노곤하고 달콤한 피로의 경험과 분리되지 않는다. 나 그리고 나의 몸은 삶의 고통과 경험으로 만들어 가는 예술 작품이다. 나는 나라는 작품의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