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노을은 헤어짐을 전하고, 푸른 풀잎은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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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문태준

진정한 여행이란 현실 너머의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발견하는 행위이다. 그때 외부는 내 안으로 들어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사람들은 그 감흥이 그리워 여행을 떠난다. 집을 떠나기 전 시선을 마당으로 돌려보자. 거주 공간이 고층빌딩이라면, 앙증맞은 인형이라도 좋다. 그 순간 배낭을 풀고 마당으로 나가거나, 인형으로 다가간 경험은 없는가.

산문집 는 그런 행동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지 기억을 더듬게 한다. 앞으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예감마저 든다. 시인 문태준은 익숙함에 속아 잊어버리기 쉬운 일상과 계절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한다. 진정한 여행의 느낌이 멀리 있지 않다는 뜻이리라.

저자는 작은 솔방울에서 바람과 별과 낮, 빗방울, 새의 지저귐을 읽어낸다. 우리의 발아래에서 자라는 푸른 풀잎의 말, 과거의 오래된 음성, 사랑하는 사람이 보내오는 눈빛, 노을이 하는 헤어짐의 언어도 솔방울처럼 말을 건넨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나눠진 글 묶음은 이야기마다 시를 품고 있다. 정서에 꼭 맞는 시들을 적절히 배치해 독자에게 산문의 따스한 감각과 함께 시적 상상력을 한껏 선물한다. 기온이 무척 내려간 요즘이니 마음을 데우려 봄 편에 더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시인은 “어떤 경로를 통해 시가 만들어지는지 명백하게 알기는 어렵다”라고 적는다. 그는 글씨들이 내려앉기를 바란다. 온통 흰 눈이 쌓인 풍경에서 흰 종이를 떠올린다. 그 위에 떨어질 첫 문장을 기다리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서로 듣는 존재’이기에. 문태준 지음/마음의 숲/280쪽/1만 6000원.

이준영 선임기자 g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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