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시대 문화풍경] We are the champions
부산대학교 강사
겨울에서 봄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으레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2월 25일이란 날짜가 관례로 굳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관례를 깨고 5월에 취임했다. 전임 대통령 탄핵으로 선거를 빨리 치렀기 때문이다. 이즈음 새 대통령 선거가 코앞이다. 동네 담벼락에 선거 벽보가 나붙었다. 기회, 구국, 복지, 경제, 내일, 위기, 통일 등 후보들이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도 각양각색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걸출한 리더가 누란지위(累卵之危)에서 민족과 국가를 구한 일은 숱하다. 한편 어떤 국면에서는 난세영웅이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으로 몰리기도 한다. 정치경제 영역에서 이러한 사례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난세 속에 영웅을 기대하거나, 반대로 영웅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현상에는 리더가 조직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우리 사회는 리더 한 사람에게 과도하리만큼 큰 기대를 품거나 리더십을 숭고한 가치로 올려세우는 일에 익숙한 셈이다.
현대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영웅적 리더십이 발현되기 어렵다. 사회가 복잡하기도 하거니와 빠른 변화 때문에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또 소통해야 할 대상과 세계도 훨씬 넓고 다양하다. 리더 혼자만으로 이를 관리할 수도 없고, 그것은 애당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국가든 기업이든 리더 한 사람의 탁월한 능력이나 자질, 열정만으로 경영할 수 없다. 어떤 조직이든 구성원 모두가 리더로서 함께 참여하고 존재감을 발휘할 때 성공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록밴드 퀸은 수많은 앨범을 히트시키며 말 그대로 전설이 되었다. 프레디 머큐리의 독보적 음악성과 열정이 퀸을 당대 최고의 뮤지션으로 올려세웠다. 밴드를 이끌던 프레디는 1991년 사망했다. 그럼에도 이 밴드가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음악적 성공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프레디는 음반 계약과 제작, 작곡과 공연 등 모든 활동을 구성원들과 함께했다. 리더가 사라져도 밴드를 유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동력은 리더만 챔피언이 아니라 멤버 각자가 모두 챔피언이었기 때문이다. 프레디가 떠났어도 그의 숨결이, 예술혼이 여전히 살아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새로운 리더를 선택해야 하는 이즈음 당신의 한 표가 중요하다는 진부한 호소가 소음처럼 거리를 메우고 있다. 마치 연인에게 바치는 헌사처럼 달달한 공약을 과연 리더 한 사람의 의지로만 실현할 수 있을까. 병마와 싸우며 멈출 때를 자각하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음악을 하고 싶다던 프레디와 멤버들, 그리고 팬들의 가없는 신뢰가 새삼스러운 날이다. 청매 홍매 백매 봉오리가 움트는 이 계절에 우리 모두 챔피언으로 환한 세상을 일구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