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심층 TV토론, 국민들은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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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최근의 ‘빅 이슈’ 두 개를 꼽으라면, 국내는 10여 일 앞둔 제20대 대통령 선거요, 국외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아닐까. 둘 사이에 관련성은 전혀 없어 보이지만 한 영상물을 우연히 접하고는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18일(현지 시간) 방송된 우크라이나 TV토론 프로그램을 말하는 것이다. 토론 중에 한 출연자가 일어나더니 다짜고짜 다른 출연자의 뺨을 후려갈겼다. 눈을 의심하는 순간, 맞은 사람도 곧장 상대에게 주먹을 날리는 것이었다. 뒤엉켜 바닥에 쓰러진 두 사람은 마치 격투기 선수 같았다. TV 스튜디오가 난장판이 된 건 물론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그렇게 친서방-친러시아 패널의 어이없는 폭력으로 얼룩졌다. 불구경이나 싸움 구경만큼 재미난 게 없다지만, 지구촌 이목이 쏠린 TV 생방송에서 주먹다짐을 목격할 줄이야….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면
그것을 꽃피우는 건 토론 문화

1997년 시작된 대선 TV토론
수박 겉핥기식 여전히 개선 안 돼

국민 알권리 충족은 정치의 의무
토론 횟수 늘리고 내실 기해야


시선을 국내로 돌려 봐도 씁쓸하고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요사이 우리 국민들은 대선 후보들이 펼치는 TV토론 앞에서 탄식을 감추기 힘들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하는 법정 토론을 포함해 여러 차례의 TV토론이 열렸지만 어느 하나 속 시원한 게 없었다. 엉뚱한 질문에 엉뚱한 대답, 시간제한으로 실종돼 버린 답변과 토론, 상대의 약점을 노리는 네거티브 망령까지. 정책 실효성을 심도 있게 토론하고 후보의 자질과 역량을 꼼꼼하게 검증하는 일은 기대난망이었다. 국민들이 분노, 흥분, 한숨, 허탈, 무기력, 포기, 절망 같은 우울한 반응과 감정들을 다양하게 쏟아 낸 이유다. 그나마 우크라이나 방송처럼 물리적 폭력이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 꽃이 개화하려면 토론이라는 요긴한 자양분이 필요하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의 ‘이상’이다. 선거제도든 토론 문화든 현실에서 늘 이상적으로 작동하는 건 아니다. 현행 우리나라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국회의원 5인 이상 의석을 갖는 정당 후보나 여론조사에서 평균 지지율 5% 이상을 받은 후보는 대선 TV토론 초청 대상이 된다.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미국이나 프랑스는 좀 다르다. 양당제인 미국에서는 대선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5%를 넘는 두 후보가 자격을 갖는다. 결선투표제가 있는 프랑스는 1차 투표에서 1, 2위를 차지한 후보에게 자격을 부여한다. 주요 후보에 대해 토론과 검증의 기회를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도 형식적인 다자 토론보다는 심도 있는 양자 토론으로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꼭 거대 양당 후보만을 대상으로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1차 토론은 기존 방식대로 다자 토론을 하되, 2차 토론에선 일정 지지율 이상인 후보자만 대상으로, 3차 토론은 최다 지지를 받은 2인에게 토론 기회를 주는 식의 차별적인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TV토론은 비대면 위주의 코로나 시대에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후보 검증에 목마른 유권자들에게는 단비 같은 존재다. 우리나라 TV토론은 1997년 15대 대선 때 처음 나왔다. 근 25년 세월 동안 기계적인 토론 방식의 문제점들이 개선되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이다. 지금의 주도권 토론에서 보듯, 후보자들은 반론과 재반론을 개진할 기회가 거의 없다. 시간제한 이상의 통제권이 없다 보니 사회자가 열띤 논쟁을 유도할 수도 없고 주제와 무관한 색깔론이나 인신공격을 막지도 못하는 모습이다. 필요하다면 사회자가 개입해 후보자들의 후속 답변을 끌어내고 토론의 질을 높일 필요가 있다.

TV토론은 토론 주제보다는 후보자의 이미지가 강조되는 함정을 지닌다. 여기에 빠지면 공약이나 인물 검증에 소홀해지기 쉬운데 이는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심층 토론을 위해 준용할 만한 것으로 ‘타운홀(Town Hall)’ 미팅이 있다. 청중들이 현장에서 질문하면 후보자가 자유롭게 홀을 왔다 갔다 하면서 답변하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 방식은 미국 대선에서 종종 활용된다. 청중은 부동층 유권자 중에 선별되고 질문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고 한다. 전문가 패널들이 후보자들에게 보다 심층적인 질문을 던지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 이 광경을 TV로 지켜보는 유권자들에겐 정책 비전과 품성, 자질 등 후보자의 역량을 파악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는 것이다. 내실 있는 토론을 위해서라면 시간을 더 할애하더라도 이런 방식은 도입할 만하다고 본다.

국민들은 지금 심층 토론에 목말라 있다. 평가 기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법정 TV토론의 횟수를 더 많이 늘리고 토론의 질을 높일 방식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당장 이번 선거에 적용이 힘들더라도 그 노력을 멈춰선 안 될 일이다. 이 땅의 선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므로. 무엇보다 정치권이 먼저 전향적인 자세로 나서야 한다. 국민의 알권리 충족은 정치의 의무다.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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