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유권자의 시간
28일로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딱 9일 남았다. 이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용지 인쇄에 들어간다. 27일에는 대선 후보들의 자세한 인적 정보와 공약을 담은 책자형·전단형 선거공보와 투표안내문을 각 가정에 발송하는 작업이 끝났다. 이제 대선 결과는 다음 달 4~5일 사전투표, 9일 본투표를 앞두고 지지 후보를 결정해야 하는 ‘유권자의 시간’에 달린 셈이다. 이 시점에서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프랑스 사상가 조제프 드 메스트르가 남긴 명언이다. 국민이 유권자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로 자주 인용된다.
메스트르의 말에 대권을 꿈꾸는 후보들의 면면을 대입해 보니 한국인의 수준이 이 정도로 한심한가 싶어 비통한 심정이다. “마땅히 뽑을 만한 후보가 없다”는 소리를 다 함께 듣고 있는 대선 주자들이어서다. 현재 지지율 1, 2위를 달리는 후보들조차 자질 문제와 비리 의혹, 가족 리스크 탓에 이 같은 지적을 받은 지 오래다. 더욱이 유력한 두 후보 측은 국가 미래와 국토균형발전, 민생을 위한 정책이나 비전 대결에 등한한 채 막말까지 사용하며 상대 후보 흠집 내기에 혈안이다. 여야 대선 후보 4명이 맞붙은 TV토론을 지켜봐도 정책 토론보다 상호 비방에 치중해 혼탁 양상이 심각하다.
후보 자질 논란에 극심한 이전투구가 더해지니 ‘최악의 대선’ ‘역대급 비호감 선거’ 등 유권자들의 탄식이 끊이질 않는 대선판이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5년에 일갈한 것처럼 여전히 4류 상태인 정치가 그동안 높아진 국민의 의식과 눈높이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메스트르의 표현에 어폐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대선은 정치 혐오감을 가진 이들과 부동층이 많아 투표율이 낮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따라서 유권자들이 “정치에 참가하는 것을 거부하는 현명한 사람들이 받게 되는 형벌은 사악한 사람들의 통치하에서 생활해야만 한다는 것”이란 말을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 시인 겸 철학자인 랠프 월도 에머슨이 최적의 후보가 없으면 차선이라도 선택하라는 의미에서 강조한 경고문이다. 이것이 최악의 정권이 들어서는 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일 게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는 구경만 하다가 기권할 대상이 아니다. 소중한 한 표들이 모여 전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남은 선거 운동 기간에 유권자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 신중하게 판단하기를 바란다. 각자의 선택에 우리 모두의 인생이 걸려 있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