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든 신혼부부부터 도피 거부한 대통령까지 “끝까지 싸울 것”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속전속결로 끝날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나흘째 이어지며 러시아군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변변한 무기는 없지만 망치, 칼을 들고서라도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선 평범한 우크라이나 시민들, 미국의 해외도피 지원도 거절하고 수도 키예프를 지킨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결사항전 의지가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예비군 합류 위해 수천 명 긴 줄
피란민도 다시 돌아와 힘 보태
젤렌스키 “여기 있다” 항전 독려
러시아 시민도 전쟁 반대 집회
속전속결 예상 달리 러시아 고전
2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개전 나흘째임에도 예상과 달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들을 점령하지 못한 데에는 죽을 각오로 싸우는 평범한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한몫을 하고 있다고 일제히 전했다.
예컨대, 키예프 외곽의 작은 마을 알렉산더에 생긴 검문소는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방어를 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산탄총을 들고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총이 없어 여차하면 망치나 칼을 사용하려 한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전했다. 예비군에 합류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수천 명의 자원 병력도 결사항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의 주요 징집소는 전 연령층의 시민들로 넘쳐 났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폴란드 등으로 대피했던 여성 중에서도 아이를 친지 또는 지인에게 맡긴 뒤 다시 우크라이나로 복귀하는 이도 상당수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헌혈하며 군인들을 돕고 있다.
미국 국방부 고위 관계자도 25일 NBC방송에 출연해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거세게 저항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은 자기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다”면서 “푸틴 대통령이 확신하는 빠른 승리는 더는 장담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향한 세계인들의 지지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규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로부터 진정한 용기를 배웠다”는 글들이 SNS 등에서 확산되고 있고 주말 사이 미국, 유럽은 물론 아시아와 남미, 호주 등 세계 곳곳에서 “푸틴은 살인마”라는 피켓을 든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러시아 독립감시기구 ‘OVD-인포’에 따르면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 내 51개 도시에서도 24일부터 푸틴의 전쟁을 반대하는 집회가 3일 넘게 이어지며 모두 3052명이 체포됐다.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비트코인 기부도 이어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이틀도 안 돼 25일까지 모두 49억 원이 모였다. 미 동부 버몬트주의 한 바텐더는 이날 “더는 스톨리를 판매하지 않을 것”이라며 보드카 스톨리치나야를 부어 버리는 영상을 트위터에 게시하는 등 미국, 캐나다, 유럽 등지에서는 러시아 상품 불매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이유로, 아마추어 정치인이란 조롱을 받았던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도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25일 미국이 러시아군에 체포당하거나 살해될 위협에 처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피신 방안 등을 준비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를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이날 밤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에서 “행정부의 주요 장관들이 여기 있습니다. 대통령이 여기에 있습니다. 군대도 여기에 있습니다. 시민들과 사회도 여기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국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여기에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국가를 지키려는 모든 남성과 여성에게 영광을.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고 말하며 끝까지 국민들과 함께할 것임을 천명했다. 또 다음 날인 26일 올린 영상에서도 “제가 항복했다거나 도망쳤다는 소문은 가짜 뉴스”라며 무기를 내려놓지 않고 조국을 끝까지 지킬 것이라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영상은 올린 지 1시간 만에 조회수 300만 회를 돌파했고 전 세계 시민들이 이를 퍼다나르며 세계로 확산됐다.
미국 예일대 우크라이나 역사 전문가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는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역사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남는 용기를 보였다는 점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