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선거 정보와 말본새의 품위
조소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늘 선거 정국은 소란했었던 기억이지만, 이번 대선 정국은 별나다는 생각이 든다. 쏟아지는 정보들의 내용도, 말하는 자들의 말본새도 품위가 없어서다. 그렇다 보니 준비된 토론장에도 정작 토론이 없다.
선거는 주권자인 국민이 통치기관을 결정·구성하는 민주적인 방법이고 국민주권원리를 실현하는 핵심적인 수단이다. 때문에 국민의 의사가 대의기관 구성에 굴절 없이 반영될 수 있는 자유로운 선거가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 선거 내용과 투표 가부를 선거인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유권자의 자유로운 선거권 행사 보장은 중요하다.
쏟아지는 정보에도 의혹만 무성
일단 내지르는 식 문제 제기 안 돼
유권자 선거권 제대로 행사하려면
후보 공직 적격 판단할 검증 중요
상대 후보 깎아내리는 방식 아닌
후보 자체로 말본새 품위 갖춰야
선거 내용의 자유는 선거인의 판단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선거 정보가 편파적이거나 일방적으로 제공되지 않는 선거 환경의 보장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선거 과정에서 국민은 정당 정책과 후보자의 공직 적합성 여부에 관한 모든 정보를 선택하여 취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선거에 관한 표현행위나 언론 보도를 최대한 허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선거의 공정도 민주선거제도의 다른 하나의 목적이라서 제한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대의민주제를 선택했고, 우리는 주기적으로 선택을 통해 대통령·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회의원 등을 선출한다. 그 선거 과정 속에서 유권자들은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선택한다. 그리고 선택 과정에서 후보자들에 대한 공직 적격성을 검증할 수 있는 다수의 정보를 얻고자 원하고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흘려주는 모든 정보가 그 대상은 아니다. 적어도 유권자에게 의미 있는 정보로 선택될 만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 후보에 대한 의혹 제기나 비방은 선거제를 택한 국가들의 선거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언론에 의해서건 상대 후보자나 정당에 의해서건 간에 다양한 매체와 방법을 통해 후보자의 공직자로서의 도덕성과 공직 수행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행해져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즈음의 불편한 소란스러움이 유독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선거 기간의 의혹 제기는 상대 후보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워 경쟁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선거 국면을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비록 검증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선거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며, 짧은 선거 기간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서 일일이 증명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는 점에서, 우후죽순인 일단 내깔기고 마는 식의 의혹 제기는 문제다.
물론 유권자가 자신의 선거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후보자의 공직 적격을 판단할 수 있는 검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검증을 위한 중요한 방법이 의혹 제기라는 점에서 후보자 검증을 위한 의혹 제기가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는 것인지는 간단히 답하기 어렵다. 유권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 그리고 선거의 공정성 확보라는 면을 두루 살펴야 하는 다각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 정국은 선거의 본질을 잃어 가고 있다. 후보자들에게 선거에서의 승리는 중요하다. 하지만 유권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승리’보다 향후 5년간을 책임질 자가 ‘누구’인가다. 그런데 유권자들에게 그 ‘누구’를 결정하기 위해 필요한 적격 검증 정보가 너무 적다는 게 이번 선거 정국의 문제다. 법적 증거력 유무도 불확실하고 수사가 진행 중인 녹취록 내용의 횡행, 승리만을 위한 맞춤형 공약의 남발, 낯부끄러울 정도의 경망한 말들.
유권자의 선거 내용 자유 보장 원칙은 원칙일 뿐, 판단의 근거로 선택할 수 있는 정보가 무엇인지 그 판단부터 혼란스럽다. 후보 진영마다 자신들의 후보를 뽑아야 하는 이유보다 상대방 후보자를 뽑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더 크게 전면에 내세우고 있고, 계속해서 내놓는 공약들에도 지킬 수 없는 약속이 적지 않으며, 특정 표만을 의식한 생뚱한 내용이 넘쳐 난다.
그래서 후보자들에게 유권자를 다시 생각해 주길 감히 청한다. 어떤 혼란스러운 상황일지라도 유권자들은, 내가 뽑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아니라 내가 뽑아야 하는 이유를 더 깊이 고민하는 자라는 것을, 쏟아 내고 마는 공언(空言)에 그치는 것인가를 두고 볼 줄 아는 자라는 것을, 그리고 내 나라의 대통령이 될 사람이 적어도 우리 말본새의 품위를 지닌 자이길 바라는 자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