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졸업 후에도 계속된 ‘학폭’… 처벌은 고작 벌금 500만 원(종합)
고등학교 내내 계속된 학교폭력은 졸업 후에도 올가미처럼 옥죄어 왔다. 그 친구(?)는 끝날 줄 알았던 악몽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요구에 학폭의 기억이 끊임없이 되살아났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서도 빼앗긴 돈이 1억 2000만 원. 하지만 법원의 처벌은 벌금 500만 원이 고작이었다.
고교 동창에 상습 공갈·갈취 혐의
3년간 818회 걸쳐 1억여 원 뜯어내
졸업 후에도 거머리처럼 해코지
‘죄질보다 형량 가볍다’ 여론 빗발
28일 울산지방법원에 따르면, 울산지법 형사3단독 김용희 부장판사는 지난 10일 상습공갈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여성 A 씨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판결 내용과 처벌 수위가 뒤늦게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사회 통념에 비춰 법원이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을 내린 것 아니냐는 분노 섞인 댓글이 대부분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2018년 1월 1일 새해 첫날부터 고교 동창인 여성 B 씨에게 “용돈을 보내라”고 요구해 자신의 계좌로 4만 원을 받아 챙겼다. 이때부터 2021년 1월 15일까지 3년 동안 무려 818회에 걸쳐 1억 2738만 원을 뜯어낸 혐의로 기소됐다.
두 사람의 악연은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됐다. A 씨는 학교에서 알고 지낸 B 씨를 2013년부터 끊임없이 괴롭히고 착취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얼굴 등을 때리거나 욕설을 하고 겁을 주기 일쑤였다. B 씨는 이 일로 극심한 공포심과 좌절감을 느꼈다고 한다.
A 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졸업 후에도 B 씨에게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갈취를 일삼았다. 자신이 오랜 기간 해코지한 B 씨가 이미 육체적·정신적으로 길든 까닭에 어떤 요구도 거절하지 못한 채 순순히 복종할 것으로 생각해서다. 사실상 B 씨는 그의 노예나 다름없었다. 일정한 직업도 없던 A 씨는 수시로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B 씨에게 연락했다. ‘담뱃값과 술값을 달라’ ‘결혼 축의금을 내야 한다’는 등 돈을 달라고 닦달했다. 유흥비는 물론이고 육아비와 교통사고 처리비, 휴대전화 이용대금, 개인대출 변제자금, 굿 비용까지 온갖 명목으로 손을 벌렸다.
재판부는 “A 씨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피해자의 심리 상태를 악용해 약 3년에 걸쳐 지속해서 겁박해 거액을 갈취한 점에 비춰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도 “협박 정도가 매우 강하지 않은 점, 3000만 원을 지급하고 나머지 돈을 매달 나눠 갚기로 약속하고 피해자와 합의한 점, 약속대로 분할금을 갚고 있는 점, 동종 전과가 없고 범행을 뉘우치는 점 등을 두루 참작해 선고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판결 수위가 공개되자 죄질보다 벌금형이 너무 가볍다는 여론이 빗발쳤다. 해당 보도를 접한 일부 네티즌은 “수백 차례나 사실상 강도질을 했는데 벌금형으로 퉁친다고?”, “학폭에 인생이 망가지기도 하는데, 벌금 500만 원으로 용서할 수 있느냐”며 거세게 비난했다.
비슷한 판례와 비교해도 형량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지난해 4월 공갈 혐의로 울산지법에서 재판을 받은 C(20대) 씨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고등학생을 도와주고 그 대가로 신발(27만 원 상당)과 현금 21만 원을 뜯어냈다가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지역 법조계 관계자는 “C 씨 사건의 경우 A 씨 사건보다 피해 금액도 적고 피해자 역시 처벌을 원하지 않는데도 징역형인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며 “단순 공갈 사건 등과 비교해도 상당히 가벼운 처벌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