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도 안 듣는 손발 떨림, 뇌심부 자극술로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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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동 질환’ 치료법

부산대병원 신경외과 이재민 교수가 본태성 진전 환자에게 수면 뇌심부 자극술을 시행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뇌심부 자극술 치료를 받은 환자의 수술 전후 손 글씨. 부산대병원 제공

A(68) 씨는 20년 전부터 시작된 손 떨림이 점점 악화되더니 최근 들어서는 혼자 식사조차 하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A 씨는 젊을 때 제사 지방문을 손수 쓸 정도로 손 글씨에 자신이 있었으나 손 떨림이 심해지면서 직장까지 그만두게 되었고 심한 우울감에 빠졌었다. A 씨는 본태성 진전으로 진단받고, 약물치료를 받았으나 호전을 보이지 않자 결국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뇌 신경섬유 이상으로 증상 유발
파킨슨병·수전증·근긴장이상증…
이마 위 절개, 전극 심어 관리
충전형 자극기로 10년 이상 ‘효과’

■나도 모르게 손발·머리가 ‘덜덜’

손 떨림 등을 포함해 신체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움직이거나 적게 움직이는 등의 신경계 이상이 발생한 것을 통틀어 이상운동질환이라고 한다. 이 질병의 원인은 대개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인간의 뇌는 무수한 신경다발의 집합체로 털실뭉치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신경섬유들은 각각 고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이 여러 원인으로 인해 과도하게 신경이 흐르거나, 또는 제대로 억제를 하지 못하게 되면서 운동장애 증상을 유발하게 된다. 퇴행성 뇌질환인 파킨슨병, 통상 수전증으로 알려진 본태성 진전,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근긴장이상증 등 여러 질환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상운동질환으로 생명이 위험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의식주 등 일상생활을 수행하는 것이 불편해지고, 이로 인해 통증이나 우울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치료방법은 질환에 따라 다양한데, 약물치료, 작업치료, 또는 물리치료(보톡스 치료 포함)가 도움이 되지만 증상을 완화시키고 고통을 줄이는 수준으로, 완치는 드물다. 문제는 이런 치료도 장기간 하다 보면 약물에 대한 내성이 생겨 반응이 점차 약해지고, 오히려 이상 운동 증상을 유발하거나 어지러움 등의 부작용이 악화되는 시점이 온다는 것이다. 이때는 뇌심부 자극술과 같은 수술적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



■전기 자극으로 뇌 이상신호 차단

뇌심부 자극술은 비정상적으로 기능이 항진된 뇌의 특정 부위에 전극을 이식한 후 목표 부위에 적절한 전기 자극을 전달하는 치료법이다. 이상 신경회로를 안정화시킴으로써 여러 이상운동질환의 증상을 호전시킨다. 뇌의 특정한 회로에 생긴 비정상적인 신호를 조절하기도 하고, 비정상적인 세포나 화학물질의 기능을 조절할 수도 있다.

뇌심부 자극술은 손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하나 머리, 목소리, 혀, 체부(몸 살갗), 하지 등에서 발생하는 본태성 진전 치료에 특히 효과적이다. 본태성 진전은 나이가 들수록 빈도가 증가한다. 프로프라놀롤(propranolol)과 같은 베타차단제로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으나, 약물 치료에 실패하거나 내성이 생긴 환자들이라면 이 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

부산대병원 신경외과 이재민 교수는 “뇌심부 자극술의 가장 큰 장점은 뇌조직에 영구적인 변화를 주거나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자극기를 켜고 끄거나 강도를 조절할 수 있어 개인별로 증상과 병의 형태에 따라 정밀한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치료법은 1987년 처음 발표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수만 명의 환자들이 시술을 받아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건강보험이 적용돼 이전보다 적은 비용으로 치료 받을 수 있게 됐다.

환자들은 수술 2~3일 전에 입원해 뇌 MRI 등 수술에 필요한 검사들을 시행하게 된다. 수술 전날 저녁 식사 후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머리를 깎고, 수술 당일 아침에 정확한 위치에 전극을 심기 위해 머리에 틀을 고정한다. 이후 전신마취 하에 수술을 받게 되는데, 양쪽 이마 위쪽으로 3~4cm 정도를 절개한 뒤 가느다란 미세 전극을 삽입하면서 뇌에서 발생하는 미세 전기 신호를 관측한다. 이중 가장 적합한 신호가 발생하는 위치에 1mm 정도 굵기의 영구 전극을 삽입한 후 가슴 부위에 삽입한 자극 발생기와 연결한다. 수술 후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 입원 기간 동안 환자의 증상에 맞춰 자극을 조절하며, 퇴원 후에도 환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경과를 확인하며 지속적인 조절과 관리를 시행한다.



■수면 뇌심부 자극술로 환자 고통 해방

뇌심부 자극술은 수술 과정과 사후 관리에서 대표적으로 두 가지 문제점이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양대 장벽을 해소시킬 기술적 진전을 이뤘다.

먼저 기존의 자극 발생기(배터리)는 수명이 대략 3-4년이어서 수명이 다한 자극 발생기를 별도 수술을 통해 교체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충전형 자극 발생기가 도입돼 널리 이용되고 있다. 충전형 자극 발생기는 기존 자극 발생기보다 크기와 무게가 크게 줄어든 데다, 교체 주기는 10년 이상으로 연장돼 환자들의 불편함을 많이 줄일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뇌심부 자극술을 시행할 때는 정확한 위치에 전극을 삽입하기 위해 뇌 신경세포에서 나오는 미세전기신호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전신마취 상태에서는 뇌 신호가 약해지기 때문에 대다수의 병원에서 환자가 국소마취 하에 깬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한다. 문제는 이렇게 깬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다보니 환자는 장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해야 하고, 통증과 수술의 공포감으로 인해 상당한 고통을 감수해야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부산대병원에서는 수면내시경처럼 편안한 상태에서 수술 받을 수 있는 최신 치료법인 ‘수면 뇌심부 자극술’을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이재민 교수는 “마취통증의학과와의 협업을 통해 환자들에게 전신 마취를 시행하되 뇌 미세전기 신호가 잘 관측되는 마취 심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면서 “전기 신호가 가장 많이 관측되고 전기 자극 효과가 좋은 부위를 찾아 최종 전극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수술 효과와 환자 만족도 모두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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