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고향 온 ‘500살 할배나무’ 이식 중 불에 그을려
주택재개발 사업으로 철거돼 부산을 떠났던 500년 된 부산 최고령 나무(부산일보 2018년 12월 26일 자 8면 등 보도)가 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식 작업 중 작업자의 실수로 나무 일부가 불에 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28일 부산 사상구청은 경남 진주시의 한 조경농장에 식재된 회화나무를 사상구 감전동 사상근린공원으로 이식했다. 이날 오전 8시부터 시작된 이식 작업은 오후 늦게 마무리됐다. 회화나무가 부산으로 돌아온 것은 2019년 2월 이후 3년 만이다.
재개발사업 밀려 진주시로 이사
대형 노거수 주례동 회화나무
28일 사상근린공원에 재이식
장비 해체 도중 나무 일부 불 타
주례동 회화나무는 높이 12m에 둘레 6m가 넘는 대형 노거수다. 수령 500년이 넘어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동안 주례동 주민들은 이 회화나무를 잡신을 쫓고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으로 여겨왔다.
2018년 주례2구역 재개발사업의 사업구역 안에 나무가 포함되면서 보존 여부를 두고 갈등이 빚어졌다. 당시에는 보호수로 지정되지 못한 노거수를 별도로 관리하는 규정이 없어 나무는 잘려나갈 위기에 처했다.
회화나무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요구에 2019년 2월 조합 측이 나무를 경남 진주시의 한 조경농장으로 옮겨 심었다. 철거 과정에서 뿌리와 가지 등이 잘려나가고, 이식 이후에도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바람에 또한번 고사 위기를 맞았다.
이후 사상구의회는 2019년 12월 ‘사상구 노거수 지정 및 보호·관리 조례’를 만들고, 사상구청도 나무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을 꾸려 노거수 살리기에 나섰다. 사상구청이 2년 넘게 생육환경개선 사업을 진행한 결과 회화나무에서 새로운 잎과 가지가 자라나는 성과가 나타났다. 이어 사상구청은 재개발조합과 협의해 노거수에 대한 관리, 소유권을 받고 부산시의 예산 지원을 받아 회화나무를 사상근린공원으로 옮겨 심기로 했다.
하지만 이날 이식 작업 중 작업자의 실수로 나무 일부가 불에 타는 사고(작은 사진)가 발생했다. 용접을 통해 뿌리 보호용 철제 장비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불꽃이 나무에 옮겨붙은 것이다. 불은 금방 꺼졌지만 나무 윗부분이 그을렸다.
마을 주민들은 이날 오후 2시께 회화나무의 귀향을 축하하는 고사를 준비했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로 고사를 치르지 못하고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주례동 주민 송동준(67) 씨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내온 회화나무가 다시 사상구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주민들이 모여 작게나마 기념행사를 진행하려 했다”면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해 매우 황당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사상구의회 조병길 의장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환영 행사를 준비할 정도로 주민들에게는 뜻깊은 나무인데,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게 돼서 유감이다”면서 “일단 나무의 상태를 지켜보고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면 재발 방지 대책을 구청에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상구청 측은 관리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이번 화재가 나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사상구청 관계자는 “뜻깊은 날 이런 사고가 발생하게 돼 주민들께 죄송하다”면서도 “시간을 두고 상황을 지켜보면서 전문가와 함께 후속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탁경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