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 948 > 담배를 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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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살다 보면 누구라도, 급하면 지름길을 찾게 마련이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문제이니 그걸 탓할 수는 없다. 다만, 자칫 길을 잘못 들면 시간이 더 걸린다는 건 잊지 말아야 할 터. 우리네 말글살이에선 ‘준말’이 저런 지름길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역시 잘못 줄이면 낭패 보기 십상인 건 마찬가지. 아래 기사 제목을 보자.



여기에 나온 ‘뒤바껴’는 잘못이다. ‘뒤바껴’는 ‘뒤바끼어’가 줄어든 말인데, ‘뒤바끼다’라는 우리말은 없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는 ‘뒤바뀌어’가 와야 했다. 흔히 이렇게 ‘뒤바뀌어’를 ‘뒤바껴’로들 줄여 쓰지만 ‘뀌어’는, 그러니까 ‘ㅟ+ㅓ’ 형태는 더 이상 줄일 수 없다. 해서, ‘뒤바뀌어’도 더 이상 줄일 수 없으므로 그냥 저대로 써야 하는 것.



그러니,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기사 제목에 나온 ‘바껴’ 역시 잘못이다. ‘바뀌어’로 써야 했던 것.



이 기사 제목에 나온 ‘사겨’ 또한 잘못 줄였으니 ‘사귀어’라야 했다. 아래 제목에 나온 ‘할켜’ 역시 ‘할퀴어’가 옳다.



사실, ‘쥐어’를 ‘져’로, ‘쉬어’를 ‘셔’로 줄이지 않는 걸 보면, 저런 잘못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심보선의 시 ‘삼십대’ 가운데 한 구절인데, ‘할켜’가 아닌 건 다행이지만, ‘할퀴운’도 옳지는 않다. ‘할퀴다’의 피동사는 ‘할퀴이다’이므로 ‘할퀴인’이라야 했던 것.

‘담배, 고만하자!/마이 폈다 아이가!/금연/힘들지만 함께해요’

부산 도시철도역에 있는 광고 문구인데, ‘폈다’가 잘못 들어선 길이다. ‘담배를 피다’라는 우리말은 없기 때문이다. ‘피다’는 ‘연탄이나 숯 따위에 불이 일어나 스스로 타다’ 정도의 뜻이 있어서 ‘숯이 피다/공기가 습해 연탄불이 잘 피지를 않는다’처럼 쓴다고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은 설명한다. 대신, ‘어떤 물질에 불을 붙여 연기를 빨아들이었다가 내보내다’라는 뜻인 ‘피우다’를 써야 한다. 그러니 저 광고판의 ‘폈다’는 ‘피웠다’라야 했다. 지름길이 없었던 것이다.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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