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 못 받고 화물 도착지 바뀌고… 수출기업 “속 타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현지 바이어와 연락이 닿지 않아 대금을 회수하지 못하거나 화물 최종 도착지가 일방적으로 변경되는 등 국내 수출기업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이 대(對)러시아 수출통제를 위해 꺼낸 조치인 ‘해외직접제품규제(FDPR)’의 적용 예외 대상에 동맹인 한국이 포함되지 않아 우리 수출기업들의 추가 피해가 예상된다.
1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24일부터 28일까지 무엽협회가 가동하는 우크라이나 사태 긴급대책반에 국내기업 101곳으로부터 138건의 애로사항이 접수됐다. 가장 많은 애로사항은 대금결제 관련으로 81건(58.7%)이었으며, 물류·공급망 43건(31.2%), 정보 부족 10건(7.3%) 등이 뒤를 이었다.
무역협회, 국내 기업 애로사항 접수
138건 중 대금결제 관련 가장 많아
미국의 대러시아 수출통제 FDPR
적용 대상서 한국 빠져 기업 이중고
현대차 러 공장 5일간 가동 중단
일례로 컬러강판 수출사인 A사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체결된 계약 건에 대해서 아직 대금을 받지 못했다. A사는 계약 물량을 이미 선적했으나 대금을 회수하지 못하면서 경영자금 운용에 문제가 생겼다고 토로했다. 휴대용가스버너를 수출하는 B사는 최근 선사로부터 ‘화물 최종도착지가 우크라이나가 아닌 터키로 변경됐다’고 통보받았다. 이후 화물 배송 등 처리 비용은 모두 수출자가 내야 해 부담이 커졌다. 피해기업들은 경영 안정을 위해 은행의 대출기한 연장이 필요하다고 건의했으며, 정부에는 수출자금 지원과 수출자 피해보상을 요청했다.
부산시 또한 지역 대러 수출기업들의 피해 대책을 위해 경제부시장을 단장으로 하는 ‘비상대응 지원단’을 설치·운영키로 했다. 부산의 경우 조선기자재, 자동차부품 등 주요 수출품목의 루블화 결제에 따른 환차손, 대금 미지급 등의 피해가 우려된다.
이와 더불어, 미국의 대러 수출통제 조치인 FDPR 적용 예외 대상에 한국이 포함되지 않아 반도체, 컴퓨터, 통신장비 등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우리 기업들이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게 됐다. 미국의 고강도 제재에 보조를 맞춰 대러 독자제재에 나선 호주, 캐나다, 일본 등 다른 32개국은 FDPR 적용의 예외를 인정받았다.
결과적으로 주요 경쟁국의 기업들이 FDPR 적용 예외로 원활히 수출하는 사이 우리 기업은 미국 측의 수출 허가만 기다려야 하는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는 정부가 수출통제 참여 입장을 한 발짝 늦게 발표한 데다 독자제재 조치도 취하지 않은 데 따른 것이다.
FDPR는 미국 밖의 외국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이 통제 대상으로 정한 소프트웨어, 설계를 사용했을 경우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제재조항이다. 당장 한국 기업은 FDPR 적용 대상인 제품을 러시아로 수출할 경우 미 상무부에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반도체만 놓고 보면 러시아로 직접 수출하는 물량은 전체의 0.06%로 비중이 크지 않지만, 우리나라 기업의 현지공장 생산 제품에 쓰이는 관련 부품들까지 고려하면 피해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현대자동차의 러시아 공장이 차량용 반도체 등 부품난으로 인해 1일부터 5일간 가동을 중단한다. 1일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재 현대차 공장의 운영이 1∼5일 중단된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대러 제재로 현대차 등 국내기업의 피해가 현실화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지만, 현대차그룹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에 따른 일시적 가동 중단”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송현수·배동진 기자 song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