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동백과 아가씨
옛날 어느 섬에 금슬 좋은 부부가 살았다. 어느 날 남편이 고기잡이 나간 새 강도가 들어 아내의 몸을 요구했다. 아내는 어찌할 도리가 없자 절벽에 몸을 던졌다. 고기잡이에서 돌아온 남편은 오열하며 아내를 섬 기슭에 묻었다. 그 자리에 나무가 자라더니 선혈처럼 붉은 꽃이 피었다. 전남 여수 오동도에 내려오는 전설이다. 이때 ‘선혈처럼 붉은 꽃’은 다름 아닌 동백꽃이다.
희한하게도 동백꽃으로 유명한 곳에선 비슷한 전설이 전해진다. 일본 아오모리현 쓰가루가 그렇다. 여기엔 동백산이 있다. 두메산골에 한 청년이 머물다 처녀를 알게 됐다. 둘은 사랑해 백년가약을 맺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청년은 고향으로 가야만 했다. 처녀는 말했다. “당신 고향은 따뜻한 남쪽 나라, 나중 오실 때 거기 아름다운 꽃을 갖다 주세요.” 하지만 떠난 님은 돌아올 줄 몰랐고, 처녀는 그리움에 지쳐 죽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돌아온 청년, 오열하다 갖고 온 꽃씨를 처녀의 무덤 주위에 뿌렸다. 이후 처녀의 무덤은 ‘불타는 듯 붉은’ 꽃으로 덮였다. 바로 동백꽃이었다.
요컨대 동백꽃은 ‘죽음보다 중한 사랑’ ‘슬프면서도 진실한 사랑’을 뜻하는 것이다. 시인가객이 이를 놓칠 리 없다. 고려 때 문장가 이규보는 “귀하게도 추위를 견뎌내며!”(所貴耐寒耳)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구나!”(亦能開雪裏)라고 찬탄했고, 시인 유치진은 “다시도 다시도 아까울 리 없는 아아 나의 청춘의 이 피꽃”이라 읊었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가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라 노래하니, 가선(歌仙) 송창식은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라고 절규했다.
그 절정은 오페라 ‘춘희’(椿姬)다. ‘춘’은 동백, ‘희’는 아가씨다. 곧 동백아가씨다.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을 이태리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가 오페라로 극화한 것으로, 동백꽃을 좋아하는 아가씨가 마음에 둔 남자와 인연을 맺지 못한 채 죽는 비극적 사랑을 그렸다. 본래 제목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를 일본에서 ‘춘희’로 바꿔 불렀는데,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예술단체 ‘음악풍경’이 5일 부산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이 ‘춘희’를 공연한다. 익히 알려진 형식이 아니라 친근하게끔 ‘거품 쫙 뺀 오페라’로 보여 준다고 한다. 코로나로 유난히 힘겨웠던 이 겨울 끝자락에 동백꽃의 애절한 사랑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면 어떨까.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